한국일보

나는 잘하는게 없어요

2009-09-23 (수)
크게 작게
유미정(뉴욕가정상담소 방과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카운셀러)

“나는 잘하는 게 없어요.” “지루하고 재미없어요.” 등으로 표현하며 어떤 일에든 의욕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 수도 있고, 얼마든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쉽게 포기해 버리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하거나 아예 대답도 하지 않는다.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고 도와주고 싶지만 실제로도 아이의 말처럼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숙제도 건성으로 끝내고 게으를 뿐만 아니라 매사에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누굴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남들만큼 아이에게 못해주는 것에 대해 안쓰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이런 행동들을 당신들의 양육방식과 관련시켜 살펴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생존을 위하여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아이의 생명줄이며 인간관계를 배우는 기초가
된다. 부모의 사랑과 긍정적인 관심을 많이 받은 아이는 세상이 안전하고 다른 사람들도 부모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어하지 않는다.


반면에 아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거나 무시한다거나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간섭하려고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에 대해서도 믿음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관계에서도 문제를 나타내게 된다. 이런 아이들도 아기였을 때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울고 짜증을 내고 고집을 피우며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부모가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면 아이는 요청하는 욕구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직은 부모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부모에게 대들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표현을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는 서서히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되고, 말하는 횟수가 줄고 끝내는 자신이 왜 힘든지 자신의 감정이 뭔지조차도 모르게 된다. 실제는 너무도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이런 긍정적인 욕구들은 억압되어 버리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다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의욕이 생기지도 않고 사는 게 귀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녀문제는 부모의 양육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자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가 자녀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어질 수 있다. 부모 스스로가 먼저 자신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고 그것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자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의 원인을 감소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매사에 의욕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진정으로 이해받고 충분한 정서적 교류를 경험함으로써 마음속에 깊이 쌓여왔던 거부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미움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면 건강한 표현방법을 통하여 적절한 말을 통하여 내적인 갈등을 만드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