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교회여, 진리의 양심을 회복하자

2009-09-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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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로 가득합니다.

파괴적인 죄, 퇴폐, 영적 파멸, 여러 재난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혼의 ‘자동경고 체계’가 작동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양심’이라고 부릅니다.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입니다. 양심은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마음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위험 경보’를 발령해야 할 상황입니다. 세속주의, 상식의 결여, 타락한 종교, 통제되지 않은 탐욕, 성적 왜곡으로 인한 혼돈에 대해 당신의 양심은 어떤 충격을 느끼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양심을 강조해 오던 교회와 크리스천이 점점 인간의 비양심적인 죄에 대해 무관심하고 개인주의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가득해져 각종 중독, 역기능 가정, 내면의 문제, 상호의존 관계 부족등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병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이 세상을 책임지고 살려야 할 기독교가 오히려 더 비상식적, 비양심적인 모습을 보이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사역을 명목으로 여러 사업체에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오래 갚지 않아 사업체가 어려워지고 교회가 문을 닫았는데, 여러 부채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습니다. 단체 친교 모임을 가지면서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질서나 공공의 안전, 일반적인 교양이나 법을 무시하는 태도,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무분별한 언어사용이나 과격한 행동, 금전 거래에 의한 다툼, 또는 개인의 이익 추구로 야기되는 불미스러운 모습, 목회자가 교인에게 요구하는 금전 및 접대, 예배당 치장이나 사역을 명목으로 지출되는 과도한 헌금 사용 등은 이미 영적 양심실종의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도 상실한 기독교는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우리 마음속에 비추게 되면 우리는 마음 속에 가득한 거미줄과 먼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그의 은혜를 더 느끼게 되고 우리의 양심은 더욱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이 반드시 나타내야 하는 진리의 양심, 믿음의 상식입니다. 양심은 빛을 받아들이는 창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많은 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크리스천의 양심은 더욱 그 기능이 발휘됩니다. 말씀과 기도의 필요성은 진리를 통한 양심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의 양심은 크리스천의 가장 훌륭한 덕목이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세례를 받는 것은 선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렇듯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은 항상 진리의 말씀으로 양심과 상식을 지키며 세상의 변화와 회복을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믿음과 양심이 서로 분리되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사도행전 24:16).


인진한 (목사·하베스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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