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경기 양심

2009-08-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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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살던 집이 에스크로에 들어 간 고객을 만나 클로징까지 조언을 해주며 열심히 살며 마련한 집을 좀 더 키워가려는 마음이 감동스러워 분주하게 새로 이사 갈 집을 봐주게 되었다.

원하는 사이즈와 가격대는 이미 정해져 있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살던 동네가 오래된 지역이라 지은 지 얼마 안 된 동네를 원해 꼼꼼하게 뒤져보며 그 젊은 부부를 돕고 싶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맞벌이는 못하고 남편 혼자서 성실하게 사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플러턴 지역을 유독 선호해 이틀이 멀다하고 새 집이 리스팅에 오를 때마다 만사 제키고 그 부부의 집을 골라 주는데 주력을 다했다.

그러나 편법을 쓴 리스팅 에이전트에게 그 고객은 돌아섰다. 몇 달 동안의 노력과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오렌지 카운티의 한 에이전트가 모든 리스팅을 예약으로 바꿔 놓고 다른 에이전트가 에스코트 해 온 바이어를 애써 익힌 후 은근히 연락하는 에이전트로 유명하다.

모든 매물을 예약하게 해 놓았기에 미리 예약한 후 집을 보게 되면 꼭 상대방 고객과 유난스레 살가운 행동이나 해서는 안 될 대화도 서슴없이 한다.

리스팅 에이전트는 그저 집을 잘 팔기만 하면 되는데 어렵게 고생하며 정성을 쏟아 모시고 온 상대방 에이전트의 바이어를 애써 자기 고객으로 이끌려고 하는 것이다.

굳이 컴퓨터에는 올렸지만 그 바이어까지 엮어 가만히 앉아 노력없이 dual로 팔려는 의도이다.

불경기와 상관없이 양심은 출장갔는지 입으로 도는 소문은 틀리지 않았다.


리스팅이 있어도 고객의 취향이 다르고 일단 리스팅을 받으면 빨리 파는 것이 셀러를 돕는 일이기에 혼자 끼고서 바이어를 구하려는 이른 바 포켓 리스팅(Pocket Listing)을 하지는 않는다.

혼자 끼고 있다가 마냥 세월 끌어 바이어를 드디어 붙여 양쪽 커미션을 받으면 참 다행인지 모르지만 당연히 잘 팔아 주리라 믿고 맡긴 셀러 입장에선 마켓에 오래 남겨지는 일이 고역이다.

비즈니스건 집이건 일단 팔려고 마음먹은 이상엔 적정한 가격에 빨리 정리해야 한다.

에이전트와 바이어가 가장 선호하는 집은 Lock Box가 설치되어 있는 집이다.
갑자기 에스크로 진행 중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깨지거나 혹은 인스펙션 문제로 인해 다른 집을 찾아야 할 때, 집 값이 더 하락할 줄 알았다가 오히려 집 값이 오를 때 예약 없이 집을 보기 원하는 고객이 의외로 많다.

꼭 오늘 집을 보려는 그들에게 그 다음날이거나 주말로 미룰 때 바이어는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에이전트를 찾는다.

막연한 집이 아닌 정말 봐야할 집을 고객은 놓쳐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셀러의 성격상 열쇠 없이 꼭 예약을 바라는 분들도 많다. 그 에이전트는 그런 셀러의 취향을 오히려 역이용 하는 것이다. 남이야 어떻든 자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기를 원한다. 운동 경기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 가며 딜을 했으면 한다.

내 고객에게 나와 함께 본 숏세일 집이 깨졌다고 직접 접근하며 본인에게 와야만 그 집을 살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떤 리스팅 에이전트와 그 후부터 연락이 안 되는 바이어의 눈 먼 행동을 보면서 씁슬해진다.

숏세일이 오래 걸려 처음 바이어가 취소했다고 다른 에이전트의 고객을 가로 채는 그 에이전트나 커미션의 일부를 보장받고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되는 바이어의 무성의 한 태도가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에이전트들의 사기를 꺾어 놓는다.

에이전트와 고객이 서로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유비무환이라고 보여주는 집마다 싸인을 받아 놓으라는 충고가 귓전을 맴돈다. 싸인보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제는 바꿔야 할런지...

불경기가 길어지면 기본적인 양심도 엷어지는 것일까?

실적을 앞세우며 인정 많은 듯 미소 짓는 그 에이전트의 광고사진이 낯설기만 하다.

어려울수록 제대로, 초심으로 가자. 더불어 사는 삶이니까.


카니 정 /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562)304-3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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