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2009-07-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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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결혼한 지 21주년을 지난다. 대학생 자녀 둘, 중학생 하나, 초등학생 셋이 가득한 집이지만 육남매 중 하나만 없어도 빈자리가 금방 눈에 띄니 역시 가족은 함께 있어야 힘이 나나 보다. 여섯도 안 많다고 팔불출 행복노래를 하고 다녔는데 이제 9월이면 큰 아이 둘이 대학으로 떠난다. 3개월이 넘는 여름방학이라고 좋아한 것도 잠시, 벌써 내일모레면 8월이다. 요즘 시계는 배로 빨리 가는 것 같다. 대학 조기졸업을 앞두고 방학 없는 서머스쿨로 고생하는 딸아이가, 바쁘다는 핑계로 제 역할 못하는 엄마로 하여금 오늘 나들이를 강행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산더미 같은 숙제와 리포트 때문에 못 간다는 큰딸을 달래서 저녁나절에 잠깐 머리만 식히자고 떠났지만 며칠 있을 것처럼 이것, 저것 준비하는 엄마는 이미 해변가에 식구들 밥상을 차린 듯 미소가 실실 새나온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약이기 때문일까? 여덟 식구가 모일 때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1시간도 안 되는 거리, 1번 하이웨이를 타자마자 펼쳐지는 태평양이 여덟 식구의 마음을 한꺼번에 활짝 열어젖힌다. 먼발치에서 바라봐도 눈뿐 아니라 온몸을 시원케 하는 코발트블루가 오늘 따라 고맙기만 하다. 맨발에 느껴지는 모래알 마사지가 바닷물에 닿기도 전에 마음에 행복 워밍업을 시켜준다. 얼마가 지났을까? 출출했던 배를 채우고 시원한 물에 온몸을 적시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사방에 웃음이 번진다.


문득 아이들과 행복게임을 하고 싶어서 제안을 했다. “얘들아 모두들 엄마 따라 해 볼래?” 그새 마음이 넉넉해진 아이들이 미소로 응수하며 흥미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왼손을 모래에 묻고 오른손으로 모래를 덮으면서 약간 흥분된 톤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번개 같이 도톰한 두꺼비집을 지어놓고 일장연설을 해댔다. “옛날 한국 사람들은 개구리과에 속하는 두꺼비를 영물로 여겼단다. 구전 동요에도 두꺼비는 헌집을 받고 새 집을 지어주는 희망의 동물이고, 콩쥐팥쥐에서도 고마운 두꺼비가 깨진 독을 막아 억울한 콩쥐를 구해 주었지. 눈도 크고 해서 비록 볼품은 없지만 전쟁 때 두꺼비 피부에서 내뿜는 독을 화살촉에 묻혀서 적군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단다. 두꺼비를 잡아먹은 뱀으로 술을 담가 먹으면 신경통이 낫는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역시 두꺼비는 고마운 동물이지.”

어느새 여덟 식구가 만들어놓은 두꺼비집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우리의 일그러진 마음의 집도 허물고 이처럼 빨리 새로 지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꺼비집을 지으면서 인생의 집도 함께 짓는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헌집을 받고 새집을 지어주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살리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미물에게도 남을 이롭게 하는 힘이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나만 살겠다며 아옹다옹하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쏠려 피부미용과 성형수술에 돈을 들일 게 아니라, 비록 볼품은 없을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잘 지어진 마음의 집을 소유하고 싶다. 한여름 밤하늘, 수많은 별빛이 유난히 영롱하다. 조금 더 넉넉해진 마음을 껴안고 오늘밤엔 두꺼비에게 감사 이메일을 써야겠다. 두꺼비@행복닷컴으로. ^^


정한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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