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여행 ‘복’

2009-07-03 (금)
크게 작게
7월은 시작부터 연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다. 그래서들 모처럼 갖는 긴 주말을 이용하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하기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여행하는 것이 오히려 고생길이 될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에어컨이 잘 된 시원한 집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나 골프 경기를 구경하며 모처럼 가족과 한가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그런데도 해마다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수백만의 LA 주민들이 LA공항을 이용하여 여행을 다녀온다.

여행은 언제 떠나도 항상 기쁘고 즐겁다. 우선 일상의 머리 무거움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기분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 가는 곳마다 낯선 새로움이어서 신이 난다. 여행은 어쩌면 틀에 박힌 일상과 직분, 직업 같은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홀가분하게 벗고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체면, 온갖 가식을 벗어던지고 어린아이가 되어서들 기뻐한다. 좋은 것을 보고도 점잖 빼느라고 감탄 한 번 제대로 못하다가, 이곳저곳에서 ‘와우~’ ‘와!’ 하는 탄성이 새나올 때마다 진짜 인간이 된 기분이다.
역시 하느님 손길의 최고 맛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여행길에는 여행‘복’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


우선 그룹이나 단체 여행을 하다 보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한다. 한 며칠 여행하는 것에 무슨 복이 따로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자기 돈 내고 이것저것 건성건성 구경거리를 보면서 여행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첫 하루 이틀이지, 이것저것 자주 하다 보면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그것 같아 나중에는 지루하고 피곤할 뿐이다.

자연경관도 한 두 번이지 계속해서 자주 보면 아무리 좋을 것을 보아도 시들해진다. 결국 진짜 재미는 ‘사람’이다. 같은 여행길이어도 ‘가이드’ 잘 만나면, 신바람이 나고 배꼽 빠지는 일이 많다. 여행길에는 학교 훈장처럼 지식만 나열해 주는 가이드는 젬병이다. 이왕이면 시골장터에서 닳은 장돌뱅이(?) 같은, 사람 사는 일에 도가 튼 사람을 만나야 복이 있다. 다시 말해 사람냄새가 나는 가이드가 좋다는 말이다.

그보다 더 큰 여행복은 물론 옆자리에 좋은 사람이 앉는 것이다. 말이 통하는 말벗이거나 스스럼없이 웃으면서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여행이 즐겁기 때문이다.

여행객 중에 심각한 사람들이 많으면 맛이 없다. 차라리 철없이 깔깔거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많이 웃을 수 있어 좋다. 한바탕 실컷 웃다 보면 그간의 스트레스도 풀리고 엔돌핀도 풍성하게 생성될 것이니 말이다.

한 며칠 다녀오는 짧은 여행이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 간의 긴 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비록 삶이 힘들다 할지라도 억지로라도 깔깔 웃으면서 재미있게 사는 가족간의 여행복(?)도 만들어가며 사는 지혜와 노력이 그래서 중요한 것 아닐까?

김재동 <가톨릭 종신부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