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거름으로 살아가기

2009-07-01 (수)
크게 작게
기독교의 능력은 생명의 회복에 있다. 땅이 더러워지고, 열매를 맺는 결과가 없다고 그 땅을 버리거나 밀어버리면 안 된다. 거름을 주고 다시 땅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돌보고 가꾸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거름처럼 이 땅을 살아가라고 명하셨다. 거름은 쓰레기이다. 찌꺼기이고 냄새가 난다. 쓸모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땅을 일으켜 열매를 맺게 하려면 거름은 꼭 필요하다. 거름 안에는 생명이 있어서 살아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기독교는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위대하고 뛰어난 성공한 리더의 모습도 필요하겠지만, 겉으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거름처럼 사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더럽다고 정죄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인간을,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에 조용히, 조심스럽게 움직이셨다. 예수님은 사복음서에서 누룩, 소금, 씨앗, 빛, 거름과 같은 비유를 들어 제자의 삶에 대해 설명을 하시면서 바로 그렇게 살다 가셨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떠들고 요란스럽게 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침묵하시고 필요한 말만 하셨다. 말과 침묵, 둘 다 언어이다. 말하는 기술만큼 침묵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말할 때 듣는 것이 침묵이다. 세상의 소리, 사람들의 소리, 아픔과 어려움의 소리를 들어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에 유행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너무 자극적이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눈에 보기만 좋고, 스스로 흥분되는 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만 서로 돌보고,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한다. 교회 밖을 향해 거름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거름은 빠른 해결책이 아니다.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름을 뿌리는 일은 어렵고 싫다. 극적이지도 흥분되지도 않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어떤 것인가? 이민사회 속 기독교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보다 실제적이고 다양한 거름사역을 제시하고 싶다. 저소득층이 부담 없이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중고물품 사랑의 가게, 젊은이들이 건전한 사상이나 정보를 교환, 습득하며 쉴 수 있는 카페, 젊은이들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직업기술학교, 저소득층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고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방과 후 교실, 아름다운 삶과 좋은 문화를 제공하는 인쇄매체, 좋은 음악과 영혼의 쉼을 줄 수 있는 내용의 방송매체, 여러 이슈를 기독교 관점에서 토론하는 세미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미는 재정지원,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활환경에서 드러내는 인격적이고, 상식적인 언행을 위한 기독교인 생활학교, 교회 건물을 사회단체에 대여하는 나눔공간, 건전하고 건강한 청소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제공하는 문화센터(체육관, 패션쇼, 사회저명 인사와의 만남, 인생캠프, 중독예방 및 치유학교를 할 수 있는 장소) 등등.

물론 이는 사회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민사회 여러 지역에 퍼져있는 교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거름의 모습으로 이제부터 시작한다면, 먼 훗날에라도 사회 곳곳에서 열매가 맺힐 것이다. 기독교의 다양한 물적, 인적 자원의 풍부함을 교회 안에서만 활용하려고 하는 태도에서 조금만 문을 열고 밖을 향해, 거름이 되어 보면 어떨까? 번잡하고 이기적이고, 천박한 모습의 기독교가 아니라, 이 땅에 정말 필요한 생명의 거름, 예수님의 냄새 나고, 오랜 시간 인내로 이 땅에 참된 사랑과 진리의 말씀을 심어가는 모습을 통해, 이 땅이 아름답고 향기 나는 숲처럼 회복되는 그 날을 향해 기독교가 거름이 되면 참 좋겠다.

인진한
하베스트교회 목사
크리스찬문화재단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