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사춘기

2009-06-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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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엉뚱한 발상과 기발한 발언으로 저와 집 사람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7학년짜리 둘째 딸애가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일어날 생각도 안하고 한밤중인양 자고 있는 아이에게 “야! 학교 늦었다. 빨리 일어나!!!”하며 급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어 젖혔더니 그때서야 눈을 부스스 뜨고는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한다는 말이 “왜?”입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아이의 “왜?” 시리즈는 엄마가 “세탁기에서 옷 좀 꺼내서 개”라고 해도 “왜?”, “컴퓨터 좀 그만해라”에도 “왜?”, “니 방 좀 치워라” 에도 “왜?”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무슨 말만 하면 왜라고 쏘아붙여서 이거 원 무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어…” 제 엄마의 푸념입니다. 그 “왜?”라는 질문이 인류의 위대한 발명가들의 어린 시절처럼 모든 사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아이가 엄청난 인물이 되겠구나”하며 차근차근 질문에 답을 해주며 기특하겠건만 그 아이의 “왜?”는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나 싫어!” 또는 “귀찮아”라는 단순 반항(?)의 의미를 담고 있는 터라 황당할 뿐입니다. 갑자기 가시가 돋은 아이의 모습이 웃겨서, 가끔 무리한 심부름을 시키며 여지없이 터져 나오는 일련의 반응을 보는 짭짤한 재미도 있기는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저희 가정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우리네 모든 부모들이 겪는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가끔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왜?”는 자신도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표현이며, 그 권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기회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월드비전 사역을 통해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도 분명히 사춘기가 있을 텐데 그 아이들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우리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 들어 처음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들의 “왜?”는 무슨 의미일까? 아니 그 아이들도 “왜?”라는 질문을 해대며 부모에게 대들까?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 하며 가출도 하고 일탈행동을 할까? 내 스스로의 대답은 “Probably not” 입니다. 그 아이들의 삶에는 선택할 만한 기회와 권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아침 꼭두새벽에 일어나 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강으로 물을 길러가는 우간다의 아이들, 아침 일찍부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캄보디아의 아이들, 50달러에 팔려가 하루 종일 담배를 마는 노동에 종사하는 아이들, 부모에게 등을 떠밀려 아동매춘 현장에서 몸을 파는 아이들… 아마도 그 아이들에게 사춘기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단어일 것입니다.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 아이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들도 우리 아이와 똑같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태어난 한 생명인데, 주어진 삶의 환경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들의 사춘기를 되찾아주는 일. 그 아이들도 뽀로통한 얼굴로 “왜?”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해댈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제가 우리 아이의 요청에 제가 오히려 막무가내식의 “왜?”라는 질문을 해대어 그 아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황당한 표정을 확인하는 유희를 즐겨보려 합니다.

박준서(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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