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 북한을 위하여

2009-06-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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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자살과 북한의 핵위협 등으로 가마솥처럼 들끓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선택한 죽음 때문에 온 국민이 슬픔과 충격, 갈등에 빠져 있는 가운데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같은 겨레요 한 핏줄이기에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그러더니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에 이어 김정일의 3남 김정운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본격적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봉건 왕조시대’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절망을 넘어 슬픔마저 느낍니다.


저는 몇 년 전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불과 며칠간의 방문이었지만, 제게 큰 충격과 부담을 주었습니다. 때가 가을이어서 두만강가의 중국 땅은 어린 시절 제가 자랄 때와 같이 아름다운 코스모스와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는 들판이 정겹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어쩐 일입니까? 북한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풍경이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분명히 비슷한 기후와 조건을 가진 땅이었지만 북한은 흡사 페스트병이 지나간 듯, 처참하리만큼 황량했습니다. 같은 코스모스라도 북한의 것은 발육이 미숙하여 파리한 모습이었고, 옥수수는 열매는 맺었으나 익지 않은 채 말라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같은 토양과 햇빛, 공기가 통하는 곳인데 나라가 다르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핏기 없었고, 현지 지도원의 안내로 들어간 국제마켓의 상품들은 신선한 해산물만 빼고는 너무나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기념품 가게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미화한 책이나 사고픈 마음이 전혀 안 드는 엉성한 것들만 있었을 뿐입니다. 점원 아가씨들도 팔겠다는 의지조차 없는 것처럼 서 있어 사회주의의 본질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묵었던 호텔은 전기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실내가 너무나 캄캄해 두려움조차 느끼게 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은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이었습니다. 온통 붉은 글씨의 섬뜩한 구호들만 난무하는 곳, 초점 잃은 눈동자로 힘없이 걸어가는 동포들의 모습, 황량함만이 지배하는 북한은 사망의 그늘이 깊이 드리운 저주의 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의 북한의 경험은 저에게 부담이 되었고 오늘까지 저는 그 부담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기윤실을 통해 북한 돕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에 대한 부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 동포들의 몫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동족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거룩한 부담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핏줄입니다. 한겨레입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나는 크리스천이기 이전에 독일 국민”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민교회와 이민 성도들의 회피할 수 없는 부담이 바로 북한을 위한 기도와 구체적인 사랑이어야 합니다.

북한을 위한 부담은 먼저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시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만으로는 안 됩니다. 북한을 도와야 합니다. 불경기로 힘들어 죽겠다는 신음을 합창하는 시대이지만, 노동자의 월급이 2~3달러에 불과한 북한과 비교한다면 때로는 우리의 힘들다는 생각이 사치스럽지 않을까요? 북한을 위한 기도와 관심과 사랑의 끈을 놓지 맙시다. 북한이 무너지고 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김병호 (횃불교회 목사) www.cemkl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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