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전운 감도는 한반도사태

2009-05-29 (금)
크게 작게
이기영 (고문)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의 긴장감이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 이 핵실험 직후 한국이 PSI 전면참가를 결정하자 북한은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면서 응징을 다짐하고 있어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이 일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유사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의 위기는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핵개발을 선언하면서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의 중심 이슈가 되었다. 이 때문에 북미간 고위급회담이 열렸고 다음해인 1994년 10월 이른바 제네바합의가 이루어졌다. 즉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 잔류하여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 주고 중유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를 또다시 선언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다시 협의하기 위한 6자회담이 그해 8월에 시작되었는데 북한은 6자회담을 하면서도 핵개발을 계속하여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 목적이 북미수교와 경제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벼랑끝 외교수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2차 핵실험을 계기로 단순한 외교수단만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6자회담과정에서 북한이 핵불능화를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차핵실험이 이루어졌고 핵능력이 3년전에 비해 엄청나게 향상된 것으로 볼 때 그 동안 꾸준히 핵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핵카드가 유용한 외교수단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목적은 핵개발로 강성대국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비해 우세한 것은 군사력밖에 없는데 핵개발로 절대우위를 확보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과거 3공 중반까지 남한은 북한에 비해 경제적, 군사적으로 열세였는데 경제건설을 위해 남북긴장완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7.4공동성명을 합의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에 남한이 북한을 능가하게 되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위해서 경제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제네바합의나 6자회담, 6.15남북정상회담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체제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핵개발을 도와준다는 것이 이번 2차핵실험으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또 다른 속사정은 국내용으로 체제를 강화하고 국민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체제는 시대적 조류와 동떨어진 체제로 외부의 바람이 들어가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이런 체제로 국민을 결속시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와 긴장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특히 주기적으로 전쟁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지금 북한은 후계구도문제로 복잡한 시기에 이러한 위기감 조성이 절실히 필요할 수 있다.

또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마찬가지로 특정한 정책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정치파워 게임의 결과물이다. 북한에서는 그간 강경군부와 온건관료간에 대내외 정책에 대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왔는데 최근 들어 여러 가지 국내외 사정으로 인해 군부강경파의 세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국방위원회가 국가권력의 중심으로 공식적으로 격상되었고 대남 협상에 관계했던 많은 관료들이 숙청 또는 문책을 받았다. 이런 변화는 한반도 평화에 매우 위험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또는 “전쟁이 나면 한국이 이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이 강경파의 수중에 있고 강경파 중에서도 초강경파로 권력이 옮겨가면서 체제위기가 닥칠 때는 독일 나치스나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같은 모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더욱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할 것이므로 전쟁위험은 더욱 커진다. 이리하여 만약 전쟁이 난다면 남한은 군사력의 약세뿐 아니라 정치력부재와 좌익세력의 준동으로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물 건너간 지금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큰 지역이 되었다. 이제 평화를 위한 마지막 노력을 더욱 강도 있게 시도해야 파국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평화를 기약할 수 없다면 군사력으로 전쟁을 억지 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