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구촌 행복지수

2009-05-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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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과 지구환경을 연계시켜 지구촌 사람들의 삶의 질을 연구하는 영국의 비영리단체인 nef(the new economics foundation)는 2006년 ‘지구촌 행복지수’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178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표본 추출하여 그들의 ‘삶의 만족지수’와 ‘평균 수명’을 ‘생태학적 개발 지수’로 나눈 결과입니다. 물론 이 논문의 근거가 되는 3가지 지표만을 가지고 행복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수치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이 논문은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78개국 대상 국가 중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남서태평양 솔로몬제도와 뉴질랜드 사이에 위치한 인구 22만명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Vanuatu)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행복지수 상위 50위 내에 선진국들의 이름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102위에 올랐고 영국은 108위,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미국은 무려 150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논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 속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결론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상위 순위에 포진한 나라들 대부분이 섬나라들이거나, 경제적·환경적 개발이 되지 않은 나라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 국민들의 삶이 개발되지 않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논문의 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국가 경쟁력이나, 국민 소득이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프면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바다 속의 물고기를 잡아먹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리고 포만감 속에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좋은 것이냐 아니냐, 내 물고기가 더 크냐 안 크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개발된 나라에 사는 우리들에게나 관심사항인 것입니다. 개발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나은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더 편리한 것을 추구하게 합니다. 결국, 행복감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스스로가 설정해 놓은 불만족의 덫이었습니다.

기독 신앙의 거인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nef의 ‘지구촌 행복지수’ 논문의 결과를 보면서 이 구절이 떠오른 것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행복의 비결은 결국 각자의 자족함에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똑같아 보이는 빌딩 사무실의 일자리나, 주택대출금과 자동차할부금을 갚는데 쫓기는 삶에 매몰되지 말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미 충만한 삶이나 모험적인 삶을 추구하십시오. 공공에 봉사하는 삶보다 더 위대하고 고귀한 것은 없습니다.” 지난 2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존스 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 졸업식 축사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미국을 떠나 행복지수 1위인 바누아투에서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된다 해도 이미 편리함이라는 단맛에 길들여 있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자리에서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생각을 바꾸는 것도 행복지수를 향상시킬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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