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양반이 교회에 다녀요?

2009-05-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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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이 교회에 다녀요?” 몇 해 전에 교회에서 열심인 K집사님이 운영하는 가게를 방문했다가 옆 가게 주인에게 듣게 된 질문이었습니다. 입술을 삐죽이면서 못 믿겠다는 표정에 담임목사였던 제 얼굴이 더 화끈거렸습니다.

‘교회생활 따로 사회생활 따로’ 이러한 이중적 생활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사회에서 신뢰받고 덕망 있는 존재였습니다. 시골에서 목회하시던 아버님은 가난하였지만 그 동네에서는 존경 받는 전도사였기에 저는 그런 아버님이 항상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의 사정은 180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오히려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기 때문에 어쩌다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자탄의 소리가 높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교회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황금만능주의와 개교회주의에 깊이 물든 오늘날 한국교회를 당뇨병에 합병증까지 겹쳐서 실명 위기에 있는 환자와 흡사하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정말 이런 영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교회 및 이민교회를 다시 회복시킬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이러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윤리부재 현상을 극복하고 ‘행함이 있는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평안과 위로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 훈계와 책망이 있는 설교가 강단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훈계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 믿음이 삶에 적용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물량주의와 이기주의에 물든 교인들의 삶을 지적하고 돌이키기 위한 말씀 선포를 말합니다.

둘째로 교회에 꼭 필요한 권징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를 말씀 전파와 성례 집행과 권징 실시로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앞의 두 가지는 교회에서 잘 이행되고 있지만 마지막 권징은 잘 시행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권징은 교회가 진리를 파수하고 교회의 성결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권징이 잘 시행되지 않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교회 중심의 목회가 이루어지면서 지역 교회끼리 지켜야 할 목회 윤리가 없어졌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바른 권징은 용서와 사랑으로 준비된 권고와 징계이어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통하여 보여준 것처럼 일선의 목회자들이 범죄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기초로 하여 눈물과 용서로 그들을 훈계하면 그 영혼도 살리고 교회도 살릴 수 있습니다.

또 교인들은 자신의 연약함이나 죄악으로 인하여 교회에서 권고나 징계를 받게 되면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태도와 경외심을 가지고 회개와 자숙의 기간을 거쳐 영적인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물론 교회를 바로 세우고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케 하기 위한 권징이 목회에 적용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고민임을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가 아닌 주님이 주신 힘으로 이 일에 순종할 때에 윤리적으로 무너져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교회가 아닌, 기독교인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피어나는 교회로 변화될 것입니다.


박혜성 (남가주휄로쉽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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