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갑자기 불붙은 ‘사자’ 경쟁

2009-01-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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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가격이라면… !”

LA, 라스베가스 등 가격 폭락지역에서는 최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집값이 폭락한 가운데 판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 얼마 전까지 만해도 주택가격이 계속 곤두박질치면서 아무도 주택 매입에 선뜻 나서는 경우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바이어들이 경쟁적으로 주택 매입에 나서고 있다. 엄청 싼 차압 주택을 보고서도 구경만 했던 잠재 바이어들이 갑자기 매입으로 돌아서 ‘복수 오퍼’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주택 시장이 침체에 들면서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 등 차압 주택 처분 위해 빅 디스카운트 급매
LA·라스베가스 등 얼어붙었던 시장에 해빙 기폭제
일부 지역 “렌트 보다 싸네”… 바이어들 매입 경쟁


뚝 떨어진 가격을 보면 주택 시장은 여전히 엄동설한인데 왜 이들 지역에서 갑자기 매기가 화끈 달아올랐을까?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한 상황에 몰린 주택이 많고 그로 인해 집값이 아파트 렌트 사는 것 보다 집을 사는 것이 더 나은 수준으로까지 내려 왔기 때문이다. 떨어질 때로 떨어져 주택 매입이 아주 매력적인 옵션으로 부상한 것이다.


주택거품 파열로 혹독한 주택 시장 침체를 겪고 있는 라스베가스가 좋은 케이스. 라스베가스는 현재 주택 가격이 일년 전에 비해 28% 하락했는데 판매는 15%나 크게 늘어났다. 이유는 주택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셀러들(motivated sellers)-차압 주택 과다 보유로 엉망인 재정 장부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은행들이나 차압 위기에 몰린 개인 소유주들이 매각을 위해 가격을 대폭 내렸기 때문이다.

뉴욕 소재 파생상품 회사인 레이다 로직사에 따르면 이처럼 꼭 팔아야만 하는 셀러가 내놓은 주택이 라스베가스의 경우 지난 10월 판매중 64%를 차지했다. 라스베가스는 전체 판매 중 매각 압박 판매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LA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간평균가격이 39만1,400달러로 타지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이곳은 전체 판매 중 매각 압박 판매분이 41%에 이르고 있다. 일년 전 28%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그만큼 매각에 몰린 매물이 많아 잠재 바이어 입장에서 보면 매우 매력적인 매입 조건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압박 매물 판매가격은 그렇지 않은 일반 매물 판매가에 비해 22%나 저렴했다. 일 년 전에는 18% 쌌는데 그 사이 가격 하락에다 할인까지 더 큰 폭으로 제시되니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다.

매각 압박 주택 판매는 일단 시동이 걸리면서 빠르게 가속되며 얼어붙었던 시장 전체에 해빙의 기운을 몰아오고 있다. 바이어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던 주택 재고분을 빠르게 채가면서 복수 오퍼 경쟁, 나아가 매각 압박 주택의 가격 디스카운트도 줄어들고 있다. 매각 압박 판매 주택과 일반 주택 판매의 가격 차이는 전국 평균 33% 할인인데 반해 라스베가스의 경우 최근 3개월간 그 격차가 17%로 좁혀지고 있다. 엄청 싼 세일에 달려드는 바이어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바이어마켓이긴 하지만 이들 매각 압박 매물이 많은 지역에서는 집값은 이미 수요를 자극할 수준으로 충분히 낮아져 있는 셈이다.

거품 파열 상처가 깊은 새크라멘토(중간가격 21만2,000달러)도 매각 압박 판매가 전체 판매의 54%(일년 전에는 41%)나 차지하고 가격도 24%나 저렴하게 제시돼 빠른 속도로 바이어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샌디에고(중간가 37만7,300달러)도 압박 판매 비율이 47%(일년전 30%)에 이를 정도로 셀러의 사정이 다급한 지역이다. 가격이 23% 더 싸게 나오고 있다. LA는 압박 판매 비율이 41%로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셀러의 사정이 다급한 곳으로 조사됐다.


디트로이트도 압박 판매 비율 40%(일년 전 24%)였고 아리조나의 피닉스(중간가 18만5,100달러)도 압박 판매 비율이 일년 전 12%에서 40%로 급증했다. 가격은 일반 판매분에 비해 30% 할인해서 제시되고 있다.

집값이 너무 싼 가격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팔짱만 끼고 가격 하락을 지켜보고만 있던 잠재 바이어들도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레이다 로직사의 마이클 페더 사장은 극도로 낮은 가격이 드디어 판매에 불을 지피고 있다며 이들 지역에서는 많은 차압 주택에 대해 입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피닉스와 샌디에고에서는 압류 주택에 대한 바이어들의 경쟁을 벌어지면서 판매가 각각 10%, 90%씩 급증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도시에서는 아직도 잠재 바이어들이 집값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를 지켜보면서 아직도 실제 매입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차압은 앞으로도 계속 늘 것이고 가격은 충분히 떨어져 어느 순간에는 판매를 부추길 정도가 될 것이다.

라스베가스나 LA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바이어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가격으로 까지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매각 압력을 받는 주택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은행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차압주택 보유가 늘어나 조속히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고 상당수 주택 소유주 역시 변동 이자율 상향 조정으로 조기 처분이 강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업이 일년 전 4.9%에서 7.2%로 증가하면서 은행의 재무상태와 개인의 현금 흐름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쏟아지는 나쁜 일들이 좋은 일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LA 등지에서는 이젠 매각에 몰린 주택에 바이어가 몰리면서 디스카운트 폭이 줄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택 가격 반등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은 알 수 있다. 물론 가격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바닥에 닿았다 해도 그것을 V자형 급반등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2010년 말에는 바닥에 도달하고 2011년부터 3~4% 소폭 상승할 것이란 낙관적인 견해가 있는가 하면 고용 하락으로 침체가 수년간 계속될 것이란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하지만 LA나 라스베가스, 아틀랜타, 새크라멘토 등 매각 압박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추가 하락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애틀랜타를 예를 들어보면 중간 평균가가 15만1,300달러로 그 정도의 낮은 가격이면 30년 고정 모기지 5.17%로 융자받으면 월 828달러면 집을 매입할 수 있다. 집을 사기에 충분히 낮은 가격이다. 렌트 중간 평균가가 월 821달러이니 집을 사는 것이 아파트 사는 것과 같다.

주택 매입시 홈 에퀴티 축적, 세금 혜택 등 이점을 감안하면 왜 이들 지역에서 주택 판매가 급하게 늘고 있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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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나 개인들로부터 꼭 처분해야 하는 빅 디스카운트 급매물이 쏟아지면서 잠재 바이어들의 구매 욕구에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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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나 라스베가스 등 일부 거품 파열지역에서는 급매물 판매 증가에 힘있어 최근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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