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비의 마지막 기회’(Last Chance Harvey)

2009-0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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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½(5개 만점)


중년이 되어 찾은 나의 사랑
“아, 놓치고 싶지 않아…”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 연기‘조화’



사랑은 젊은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도 그들 못지않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적어도 이 영화에 의하면.) 어쩌면 뜨거움으로 그 농도를 측정하는 젊은 사람들의 사랑보다 깊이와 포용성과 은근함을 내성으로 지닌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나이가 71세인 더스틴 호프만이 뒤늦게 사랑을 발견해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자신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가 돌았구나’하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호프만의 마지막 기회인 사랑은 그의 무르익고 세련된 모습과 연기 때문에 너무나 사실적이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 중년(물론 영화에서는 호프만이 나이를 71세로 밝히진 않는다)들의 사랑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 순전한 까닭은 호프만과 그의 사랑의 대상인 엠마 톰슨(39)의 기막힌 화학작용 때문이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아름답고 가슴 훈훈할 수가 없다.

묘한 것은 톰슨이 키나 덩지로 호프만보다 더 크고(그래서 구두를 자주 벗는다) 우람한 데도 둘의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육체적 부조화가 오히려 내적 조화를 북돋는 것일까. 그리고 둘의 감정적 접근이 어색하고 머무적거려 마치 첫 사랑의 행적을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사랑은 매번 첫 사랑인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광고음악을 작곡하는 하비 샤인(호프만)은 런던에 살면서 서로 오래 못 본 딸 수전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다. 고독하고 작곡 문제로 인한 상사와의 불화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하비에게 공항 소속 여론조사관인 케이트 워커(톰슨)가 다가와 말을 건네자 하비는 퉁명스럽게 이를 거절한다.

딸이 하비에게 결혼식 때 남편에게 자기를 넘겨 줄 사람으로 의붓아버지(제임스 브롤린-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남편)를 선택했다고 말하면서 하비는 가슴이 아파 딸 결혼식 참석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돌아가려고 공항으로 향한다.

교통 혼잡으로 비행기를 놓친 하비는 구내 바에 들러 자니 워커 블랙을 스트레이트로 거푸 마신다. 하비가 뒤를 돌아다보니 케이트가 샐러드를 먹으면서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케이트는 작가 지망생 책벌레다. 하비가 케이트에게 말을 걸면서 둘은 마치 악의 없는 다툼을 하는 소년과 소녀처럼 티격태격한다.


런던 지리를 모르는 하비가 케이트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하나가 둘이 되어 하비는 케이트를 딸 결혼식에 함께 가자고 초청한다. 결혼식 후 둘은 밤새 런던 시내를 걸으면서 이튿날 재회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두 고독한 중년 남녀의 조심스런 사랑의 점화와 접근이 편안하게 매력적으로 그려진 감정적 작품이다. 둘이 계속 걸어 다니면서 포착되는 런던의 모습이 보기 좋다.

이 영화는 호프만과 톰슨의 콤비와 뛰어난 연기 때문에 평범한 얘기를 감정적으로 절감토록 승화시켰다. 쓸쓸하면서도 위엄 있는 톰슨의 연기도 좋지만 순진하고 귀엽기까지 하고 또 고독하면서도 장난 짙은 아이 같은 호프만의 연기가 뛰어나다. 둘 다 골든글로브 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 후보에 올랐다. 조엘 합킨스 감독.

PG-13. Overture. 그로브(323-692-0829), 모니카(310-394-9741), 랜드마크(310-281-8233), 셔먼옥스 아크라이트(818-501-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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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왼쪽)와 케이트가 런던 거리를 걸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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