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내 신을 네가 한 번 신어 보렴?

2008-09-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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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이다. “에스크로 취소한다는 팩스입니다.” 일찍부터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도대체 지난밤에 무슨 꿈을 꾼 것인지 아침부터 계속 얻어터지는 시작이었다. 다른 에스크로도 12시까지 취소 여부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왠지 찜찜하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취소란다. 머리가 깨지듯이 아파온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셀러들에게 어떻게 보고하고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나?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자.” 벌써 엎질러진 물이고 상대방의 결론은 이미 난 상태이다. 최선을 다해서 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 에이전트의 일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일단 우편물부터 정리. 억! 아들의 크레딧카드 고지서가 깜짝 놀랄 만큼 액수가 높다. 통장의 잔액 숫자가 나보다 먼저 내 머릿속을 쭉 훑는다. 이번에는 책상에 얼굴을 묻고 만다.
지난 2년간 계속되던 주택 거래량 하락 추세는 6, 7월부터 다소 주춤해져서 다시 바이어들의 입질이 시작되고 있다. 최고가를 웃돌던 2005년에 비하여 가격이 많이 떨어졌고 앞으로 또 언제 반전세로 돌아설지 사실 모르는 일이어서 행동으로 옮기는 바이어들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잠정 주택판매 지수가 월가의 당초 예상치를 1% 정도 웃돌며 5% 이상 상승했고 이는 주택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음을 뜻한다. 9월에 통계가 나오는 8월의 증가량은 그 전 달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사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격의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적게는 5~6% 많게는 15% 정도까지 거품이 빠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바이어들이 에스크로를 열고나서 또 한 번의 흥정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리 저변에 “또 한 번 깎아보다가 안 되면 말고 또 다음 집을 찾아보지 뭐”가 있다. 얼마든지 더 좋은 집이 더 싸게 나올 테니 말이다.
셀러들은 고통스럽다. 1, 2년 전에 아주 좋은 가격에 팔린 우리 집보다 훨씬 못한 옆집의 기억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때 집은 팔지 않아도 집값이 쭉쭉 올라가 깔고 앉아 있는 에쿼티가 수십만달러, 그 재산의 양을 생각하며 아침·저녁으로 얼마나 뿌듯했던가. 그리고 그 후로도 내가 집을 고치는데 쓴 돈이 또 수만달러다. 따라서 리스팅 가격을 떨어진 시장가대로 낮게 부르는 에이전트는 나쁜 사람이요, 적군이다. 하여 일단 좀 높이 부르는 아군 에이전트에게 또 나중에 깎일 것을 계산하여 더 올려서 집을 마켓에 내놓는다.
“우리 집은 그래도 좀 특별해. 이러저러해서 더 주더라도 우리 집은 팔릴 거야.” “작자는 따로 있어. 딱 한 사람이면 돼.” 그러나 팔리지 않고 수개월, 앞으로 더 계속 떨어질 것 같고 셀러는 지친다. 물론 고가의 집이기는 하나 70만달러까지 가격을 내린 매물도 있는 시장이다. 가격을 내리고 내려서 겨우 들어온 바이어, 에스크로를 열더니 바로 트집을 잡아 수천달러를 다시 깎자고 한다. 셀러의 계산은 처음 가격이 내 돈이었다. 시장가는 상관없다. 앉아서 오만, 십만달러를 고스란히 빼앗긴 기분이다. 꼭 그 정도는 받아야 다른 빚도 갚고 다음 집도 사고 그러는데 억울하고 기막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멀쩡한 집을 흠 잡아 그렇게 많이 크레딧을 달라고? 안 돼!!!” 아군인 줄 알았던 내 에이전트는 적군처럼 굴며 바이어에게 깎아주자 그런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는 영어 표현이 있다. 한국어로는 “네가 내 신발을 한 번 신어 봐라”이다. 셀러와 바이어가 서로 입장을 바꾸어 서로의 신발을 신어 보자. 또 집을 사고파는 것은 어떻게든지 손해 보지 않겠다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려는 싸움이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 사랑 넘치는 안식처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바이어는 최고 비쌀 때 비하여 참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으니 행복하고 셀러는 또 더 떨어지기 전에 유능한 에이전트를 만나 그 때 그 때 가격을 잘 내려서 에스크로를 열었으니 둘 다에게 그리 나쁘지 않다.
서로 신발 바꿔 신어 보기가 불충분해서 깨진 에스크로, 다른 바이어를 찾아 다시 일을 시작한다. 다음에는 잘 바꿔 신어보고 협조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반드시 에스크로를 성공시키고 그 수고비로 아들 카드빚을 갚아 주어야지. 그러나 아들과 신발을 바꾸어 신어보지는 않겠다. 이 불경기에 절약하고 또 절약해도 모자랄 판에 어디 두고 보자 혼을 내줄 것이다. 연달아 동시에 깨진 두 에스크로 때문에 오늘은 엄마도 또 혼나는 아들도 우울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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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 김<리맥스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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