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2>마운트 휘트니

2008-08-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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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2>마운트 휘트니

위트니 트레일의 마지막 코스를 오르는 등정대.

캘리포니아  명산을 찾아서<2>마운트 휘트니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 트레일 등정에 나선 설암산악회원들.

미 본토 최고봉‘위엄’

▲마운트 휘트니(Mt. Whitney)
해발: 1만4,494피트
거리: 왕복 22마일
시간: 2박3일
등반고도: 6,200피트

미국 본토 최고봉이라는 이름답게 여름철 성수기에는 휘트니 트레일 등정 허가를 받기가 무척 어렵다. 비수기인 11월에서 다음해 4월까지는 허가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기간에는 출발점부터 눈으로 덮여 있어 동계산행의 장비와 훈련이 선결되어야 한다. 설암의 연례행사로 내려오는 위트니 동계산행은 4월 마지막 주에 실시된다. 올해도 11명의 건각들이 지난 수개월간 남가주의 발디와 샌고고니오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테스트 해보며 한편으로 고산 정복을 향한 진짜 산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모였다.

캠핑장이 있는 포탈은 눈으로 가득 덮여 있어 한 겨울의 모습 그대로이다. 취침을 위해 텐트에 들자 좁은 공간에 누운 탓도 있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와 염려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6시 기상하자 부지런하신 회장님 이하 선발진이 떡국을 끓여놓았다.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따로 반찬이 없어도 되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떡국이 더 없이 좋은 산행식이 아닌가 싶다.
무더위로 허덕거리는 도심의 날씨 영향이 있었는지 약 8,500피트 높이에서 시작된 위트니 트레일은 춥지 않았다. 하지만 출발점부터 눈으로 덮여 있어 모두들 크램펀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오른다. 깨끗한 눈이 그대로 있는 걸로 봐서 우리가 거의 처음으로 오르는 것 같았다.
겨울 산행은 등산로가 눈에 덮여 있어 방향을 정해 곧 바로 오르게 되는데 거리를 단축하는 이점이 있지만 경사가 급박한 곳은 힘들고 위험하여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모두들 부지런히 오른 탓에 11시께 설국으로 변한 아웃포스트 캠프(Outpost Camp)에 도착했다. 하늘을 찌르는 웅장한 화강암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여름철에는 폭포수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이곳은 눈밭으로 변해 있었다. 포근한 장소를 골라 점심을 하기로 했다. 버너 두개에 냄비를 올리고 라면과 누룽지를 끓여내자 배고픈 산악인들은 눈치 볼 틈 없이 열심히 먹어 치운다.
점심 후 우리의 오늘 목적지인 트레일 캠프(Trail Camp, 1만2,000피트)까지 최소 2시까지 올라가야 텐트 치고 휴식할 여유가 있다고 한다. 론파인 레익(Lone Pine Lake)과 미러 레익(Mirror Lake)은 꽁꽁 얼어 있고 더 이상 물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었으나 하늘에서 내리 쬐는 태양도 강렬했다. 나중에 산행이 끝나고 집에 와 보니 선크림으로 철저 보호한 얼굴은 괜찮은데 목 주위가 빨갛게 타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5시 기상하자 벌써 아침 떡국이 준비되어 있다. 정상조 6명 중에 2명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4명이 오르기로 결정되었다. 약 50도 각도의 눈 덮인 트레일 크레스트를 오르는 것이 이번 산행의 백미이다. 출발점에서 99스위치백 옆으로 계곡을 따라 트레일 크레스트까지가 3마일 그리고 바늘산 뒤쪽으로 위트니 정상까지 2마일, 거리는 멀지 않지만 3개의 복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먼저 가파른 눈산, 트레일 크레스트에서 만날 살을 에는 듯한 바람 그리고 고산증이다.
오후 1시까지 정상을 밟지 못하면 뒤돌아서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다행히 바람은 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앞서 2명의 한인 산악인들이 눈길을 다져 올라가는 바람에 그 두 분을 따라 오르는 우리 일행이 많은 덕을 보게 되었다. 약 3~4시간이 소요된다는 눈 산을 오르면서 약간 허리를 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라선 각도가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저 아래 새로이 출발한 팀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개미가 줄 서서 아물거리는 듯이 보인다.
지난해에는 눈이 많이 덮여 쉽게 전진을 하지 못하고 일일이 눈을 다지느라 시간이 무척 소요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올해는 우리를 환영하는 위트니의 따스한 마음이 있는지 적설량이 적다. 크램펀을 배낭에 넣고 여름산행을 하듯 오르는 우리 일행 앞에 눈으로 반쯤 덮인 위트니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정상 대피소도 보인다. 고소가 조금 오는 것 같지만 모른 척하고 열심히 오른다. 회장님이 손수 정성들여 챙겨준 행동식 주머니에서 이것저것 골라 먹으며 힘을 내니 11시40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5시간40분 만에 올랐으니 매우 좋은 성적이다.
같이 올라온 산악인들과 사진도 찍으며 좌우 360도로 펼쳐지는 하이 시에라를 여유롭게 감상한다. 약 30분을 지체한 뒤 다른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트레일 크레스트로 내려간다. 트레일 크레스트에 내려오자 회장님과 일부 회원들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다. 반갑게 어울려 사진을 찍고 눈 산을 내려오는데 일부 대원들이 겨울 내 연습한 멋진 글리세이딩으로 엉덩이를 깔고 순식간에 내려가 버린다. 멈칫 멈칫 내려오는 초보들에게 회장님이 일일이 밟고 미끄러지는 연습을 보이면서 같이 실행에 옮겨보니 실전은 이렇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일요일 아침 하산 길은 기분이 좋다. 날씨도 청명하고 눈도 부드럽다. 새로이 눈 산으로 오르는 팀들이 여럿 보인다. 이번 산행은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 희생을 하면서 후배들과 함께 질서 정연하게 행동한 산행이었다. LA로 향하는 차안에서 연신 웃음꽃이 핀다. 차창가로 멀어져가는 산봉우리를 보면서 우리에게 자연을 향한 애틋한 관심을 갖게 해주신 창조주께 감사를 드렸다.

<자료 제공: 설암산악회
(재미 대한산악연맹), suramalp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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