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8-07-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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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승욱이의 이야기 ‘네 박자의 사랑’이 한국에서 방송된 후에 가까운 친척부터 먼 친척까지 왜들 그리 많이 시청을 하셨는지 시청 소감을 전화로 받느라고 친정엄마가 제일 고생을 하셨다. 직장을 다녀오면 친정엄마가 누구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 말씀을 해주시는데 엄마가 더 흐뭇해하신다. 어떤 친척분은 TV를 부둥켜안고 우셨다는 내용부터 승욱이가 저만큼 크기까지 가족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는 격려의 말씀까지 다 놓칠 수 없는 귀한 전화였다.

전화가 점점 줄어들 즈음에 시댁 큰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TV 잘 봤다. 얼마나 울었는지. 방송 직후에는 정신이 없을 것 같아 이제 전화했어. 승욱이 너무 잘 키웠더라. 에구 녀석 역시 아빠 닮아서 잘 생겼어. 애기 때부터 잘 생겼더니 지금도 멋지게 잘 컸네.” 역시 시댁에서는 언제나 좋은 것은 다 남편 닮았다고 하시는 것 같다. 좋게 말씀하신 후에 꼭 ‘아빠 닮아서’라는 말씀은 비싼 물건 구입 후에 따라오는 사은품 같다. 그래도 나쁜 말씀이 아니니 나도 함께 수긍하면서 “뭘요. 아직 다 키운 것도 아닌데요.” 애써 겸손한 척을 하며 형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애 데리고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미국이 뭐가 좋다고 거기서 나오지도 않고 있나 라고 생각했었어. 사실 너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 미국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거든. 거기다 친정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형부까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 상황에서도 미국에 있는 네가 제정신이 있나 싶었어. 그런데 TV를 보고 그 곳에서 너와 사돈어른을 뵈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니가 오죽했으면 그곳에 있었겠니. 너무 고생 많았다. 너무 수고했다. 너무 대견하다.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 이씨 집안에 시집 와서 그동안 말 못하고 승욱이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지?”

“아니요, 형님, 저 그저 엄마니까 열심히 키운 것밖에 없어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이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보다 우리 시댁에서 말씀해 주시니까 너무 기분 좋아요. 하나도 힘든 것 없었어요.”

“니가 그리 밝으니 애도 그리 밝은 거야. 너무 감동이었어. 내 동생처가 승욱이 엄마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분명 좋은 날 올 거야. 그때까지 조금만 더 수고해라. 지금까지도 잘 키웠잖니.”“감사합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제일 미안했던 분들이 시댁 어른들이었다. 대부분 미국에 와 보시질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어떻게 승욱이를 키우고 있는지 설명을 해 드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승욱이를 낳았을 때 시아버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시어머님의 묘 자리를 잘못 써서 애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씀하셨었다. 시댁은 유교 집안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장애가 있는 것을 보면 업보나 조상을 잘못 섬긴 것으로 생각하셨었다. 기독교 집안의 며느리인 나는 승욱이를 낳은 후에 일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가슴앓이를 많이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승욱이 때문에 괜히 눈치 보게 되고 시댁에서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주눅이 들어서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했었다. 마치 승욱이를 낳은 모든 것이 나의 잘못으로 생각했기에 그것에서 벗어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승욱이를 낳은 지난 9년간 시댁에 어떤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항상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만 연거푸 말씀드리다가 이번 방송을 통해 완전 모든 것에서 해방(?)을 얻게 되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승욱이 엄마로 아이를 열심히 키웠다고 잘 키웠다고 그 어떤 칭찬의 말씀도 다 감사하다. 하지만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밖에서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이 그 모습이 얼마나 진실이 아닐 때가 많은가? 가정에서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 난 더 귀하고 값지다. 가정에 있는 때의 내 모습이 진짜 모습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형님의 전화 한 통화로 지난 9년간의 말 못할 서러움이 한 번에 씻겨나간 것 같다. 시댁에서 한 번도 구박이란 것을 받아보지도 않았는데 장애 자녀를 낳았다는 그 자체가 며느리로서 얼마나 마음에 무거움이 있었는지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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