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다림이라는 선택

2008-07-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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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매물로 인해 바이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바이어를 위한 신문 광고에 추천 매물이 넘쳐나면서 매일 새롭게 업그레이드 되는 집의 사전 답사에 에이전트의 발길이 분주해진다.
지인의 소개 대신 광고를 통한 고객은 오래 기다려 주지 않는 특징이 있다. 넘치는 부동산 기사의 홍수로 전반적인 집 값의 하락에 그간 내 집 장만이나 투자를 오랫동안 기다린 고객들이라 단 한 두개의 매물을 보고 바로 결정 짓지는 못한다. 마음에 들어 비록 오퍼는 썼어도 주변에서 더 떨어질 거라는 높은 목소리가 계속 들리면 그 다음날 과감하게 취소해 버린다.
그 지역을 내 집 만큼 구석구석 잘 알면서 융자, 이자율, 향후 미국 경제상황등 늘 빠른 정보를 위해 매일 몇 시간씩 컴퓨터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전문 에이전트의 조언보다는 감성에 치우친 직감으로 몇 마디 건네는 주변 사람들의 가벼운 말에 어렵사리 고른 자신의 선택을 쉽게 접는다. 내가 안 하면 남들도 안 하길 바라는 동조심리가 큰 위력을 나타내면서 내 집 고르듯 최선을 다한 에이전트만 머쓱해진다.
한 달 전 오랜 이민생활 끝에 차곡히 모아 놓은 돈과 넉넉히 쌓인 에퀴티를 뽑아 투자용 매물을 사고 싶다는 바이어를 만났다.
100% 이익이 보장되는 투자란 없기에 향후 몇 년 후의 집 값 반동이 이뤄질 수 있는 매물을 고르느라 여러 도시에 나온 집들을매일 보면서도 선뜻 골라 줄 집이 마땅치 않아 시간을 벌 수 밖에 없었다.
하향선을 긋는 마켓이 언제 회복 될 지 미지수라 다운페이라는 목돈을 잠겨두고 얼만큼의 기간을 초조함없이 기다리려면 무조건 시세보다 낮은 매물을 찾아드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은퇴자금이란 설명에 그리 다급하지 않으니 다만 좋은 투자용을 천천히 골라 달라는 당부에 경매매물까지 꼼꼼하게 분석해 드디어 마땅한 집을 찾게 되었다.
시세보다 25% 가까이 다운된 매물이라 고객에게 매일같이 안부 묻는 형식적인 전화를 굳이 못하는 본인의 습관을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흐믓했다.
에이전트라도 사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매물을 고객에게 권할 때 신명나듯 그 다음날 흥겨운 목소리로 연락했더니 뭔가 서먹한 인사가 첫마디부터 황급히 전해져 왔다.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쉽게 사게 되더라는 고객의 말에 즉시 골라주지 못한 내 자신이 그 순간엔 게으름 핀 것처럼 보여지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다른 투자자에게 연결 돼 애지중지 고른 매물을 놓치지 않아 충분히 위안 삼았지만 요즘처럼 조심스런 상황에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론을 애써 바꾸고 싶진 않다. ‘빨리 빨리’에 물든 우리 관습이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좀 더 제대로 갈 수 있는 길을 여유있게 가지 못 한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살다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의외로 많다.
남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고생도 했지만 그에 비례해 얻어지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희망이라는 내일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지혜가 있기에 오늘 주어진 하루에최선을 다할 수 있으리라.
때론 원치 않는 현실이지만 기다림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추스린다면 좀 더 나은 이민생활이 되지 않을까?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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