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여름날의 행복

2008-06-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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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객과 플러턴의 여러 집을 보면서 서너번의 만남 끝에 그 분의 살아 온 인생여정을 조금씩 들으며 마치 소설책 한 권을 읽은 듯 다채로운 느낌을 받았다.
온 가족의 반대를 뒤로 하고 잘 살아오던 40대의 경제적인 안정을 접어가며 남편의 의사대로 결심한 이민생활은 그간 열심히 살아 온 그녀에게 한편으론 어이없는 도전이었다.
앞만 보고 살던 그녀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기까지 무수한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욕심을 줄여갈 즈음 그들의 가정엔 사랑보다는 서로를 단절시키는 원망이 가득차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다시 돌아가려던 그녀의 결심이 남편의 사고로 인한 병상을 지키게 되면서 한 순간 무너지게 되었다. 그녀가 그렇게 미워했던 남편의 약해진 모습을 보며 그동안 내색않고 묵묵히 지난 세월 껴안은 그 사랑이 순간 태산같은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켜 준 그가 있었기에 자신의 삶이 존재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녀가 그간 인내해 온 세월이 벅찼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때론 굴곡진 현실이 버거워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매이다가도 누구나 인생의 황혼길에 서면 삶은 그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자신이 아둥바둥 거리지 않아도 순리대로 차곡히 정리되어 또 다른 내일이 놓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평탄하지 못했던 결혼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인내를 필요로 할 때마다 화폭에 그림을 그리며 분을 삭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처음엔 수많은 종이와 물감을 망치더니 어느 새 적대감과 화를 이겨 낸 붓 끝에 힘이 들어가 생기가 돌게 되고 그렇게 갈등을 느끼던 남편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면서 살아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며 고백하는 그 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머문다.
대나무를 잘 그린다며 특히 화가 날 때 대나무는 더욱 강한 터치로 쭈욱 뻗는데 우연히 로컬신문에 소개 되면서 그녀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빠지면서 부터는 남편에 대한 집착이 적어지면서 싸울 일이 없어졌는데 그러더니 예전의 그 대나무가 잘 안 그려진다며
그래서 이젠 대나무 보단 화사한 꽃을 그려내고 싶어 집을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다.
넓은 대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는 그녀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였다.
남편을 이해하는 동안 그림 실력이 늘었다며 늘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일찍 벗어났다면 좀 더 남편을 편하게 감싸줄 수 있었다며 아쉬워 했다.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자기와의 인내로 잘 승화시킨 그 분의 소담스런 인생얘기를 들으며 굴곡이 심했던 만큼 얻어진 그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함께 공감해 보았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역경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도 있고 삭막해 질 수도 있다. 내일을 모르기에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다 보면 우리가 원했던 미래보다 더 큰 안정과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따라 유난했던 한 낮의 더위를 그 고객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인해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청량함을 느끼며 덩달아 행복했던 하루가 무척 짧게만 여겨졌다.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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