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셀러의 마음

2008-05-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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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잘 가꾼 집의 리스팅을 받게 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장만한 집에서 알뜰살뜰 열심히 살며 자식 잘 키우다 아들 따라 타주에 간다며 내 놓은 집이다.
구석구석 주인의 취향과 정성이 담겨 아기자기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군데군데에 묻어 나왔다. 한국에서 가져 온 빛바랜 흑백사진 속 젊은이들은 이제 은퇴를 바라 볼 나이가 되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만나 경제적으로는 늘 빠듯했지만 언제나 도전을 던져주는 미국에 그들은 젊음과 희망을 심고 꿈을 키워왔다.
큰 병치레 않고 바쁜 생활속에 부모 손길 구구절절 닿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고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작은 물건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으는 셀러는 물건마다 자신들이 살아 온 스토리가 있다며 골동품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에이전트 입장에선 가구배치 이외의 시원한 공간이 마련됐으면 했지만 워낙 테마에 맞게 꾸며진 무대처럼 빈 공간 없이 진열된 소품들이 앙증맞아 보였다.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선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를 예쁘게 만드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한 눈에도 팔기 위해 깜짝 리모델한 집이 아니라 좋은 가격에 팔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
주변의 시세를 뽑고 크게 손 볼 데가 없어 적정한 가격을 컴퓨터에 올렸는데 셀러는 자기 집을 누가 방문하는지 알고 싶어 예약하기를 바라면서 일일이 오는 바이어들을 마치 초대한 손님 대하듯 정성스런 설명을 잊지 않아 다녀간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일주일이 안 돼 처음 받은 오퍼에 셀러 또한 흡족해 하면서 딜을 하던 중 바이어 가족의 갑작스런 가격인하 제의를 받게 되었다. 매스컴과 주변에서 향후 집값이 더 내림세로 돌아서는데 좀 더 깎지 그랬느냐는 의견이 많다며 이미 낸 가격에서 몇 만불 깎자는 의견을 보냈다.
바이어의 심리는 이해하지만 먼저 제안한 가격으로 샀어도 셀러가 그동안 집을 잘 관리한 점을 고안하면 좋은 딜이었기에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보았다.
셀러는 처음에 제의한 가격과 차이가 나자 조율을 할 듯 하다가 본인은 가격보다 자신이 정성을 들인 집이라 그 만큼을 받고 싶었다며 만일 처음 오퍼가격이었다면 그 마음이 고마워 고가의 그림과 가구를 남기고 갈 예정이었다며 가격조정을 거절했다. 집을 건물이 아닌 잘 살아온 보금자리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바이어를 만나고 싶다며 일단 낸 가격을 인하해 달라는 요구를 바로 접어버렸다.
새로 분양 받는 집도 흡족하지 않기 마찬가지인데 주변 환경과 컨디션이 모두 좋은 집을 단지 주변여론으로 놓치는 경우가 많음이 안타깝다.
요즘 은행매물이 많지만 그 딜은 성사가 오래 걸리거니와 그 매물도 오퍼가 여러개면 가격은 더 올라가고 대부분의 은행매물은 안팎으로 고칠 부분이 너무 많아 수리비용이 적지 않으므로 오히려 셀러가 잘 관리한 집을 Nego해서 사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최근 몇 년새 부동산의 단기투자로 목돈을 쥔 투자자들이 많아 부동산 경기가 과열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마켓이 다운된 것이 아니라 그간의 시장이 필요이상의 투자를 보인 것이라면 이제는 실수요자 위주의 거래가 형성돼 단지 그 열기에 비하면 신중하게 조심스레 딜이 일어나는 것뿐이다.
학군 좋고 안정이 된 도시의 렌트는 포화상태이고 캘리포니아주로 이사오는 인구증가가 전 미국에서 상위권에 드는 것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집 값 하락은 없으리라 본다. 단기 투자가 아닌 내 집을 마련하려 한다면 소신껏 선택하기를 바라며 단지 가격에 너무 연연해 이사 들어가자마자 후회하는 어리석음은 피했으면 한다. 사람이나 집이나 오랜 기간 지나봐야 좋은지 알 수 있으니까.
숫자보다 정성을 받고 싶은 셀러의 마음이 파란 하늘처럼 맑아만 보였다. 그 집의 주인은 정말 따로 있는 것임을 매번 느끼지만 평생 무난한 행복을 꾸려나간 셀러의 마음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행운의 바이어가 곧 나타날 수 있기를 소원한다.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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