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29폭동 단상

2008-04-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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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6년전 생각하기에도 끔직했었던 4.29 폭동이 발생한지 16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이맘때 필자는 이 칼럼란을 통하여 두차례에 걸쳐 4.29폭동의 발발원인과 날자별 그리고 시간대별로 폭동의 확산과정과 진압과정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자세하게 기술하였었다.

로스 앤젤레스 지역에서 이러한 인종폭동의 발생은 오래전 부터 예견되어 온 사태로서, 해당 경찰국을 비롯한 정부의 유관기관에서는 어느 정도 사전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이 4.29폭동이 발발하기 약 10년 전인 1980년도 초, 미국의 유수한 건설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 하루는 헝가리 출신의 전기 엔지니어와 점심식사 도중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나에게 들려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식사도중 그는 나에게 “헤이 키 한! 너희들 한국사람은 동양의 쥬이쉬라면서-?!라고 물었다.


나는 그가 묻는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래, 우리 한국사람들은 동양의 유태인으로서 보통 주 7일, 그리고 하루에 16시간 이상씩 열심히 그리고 억척같이 일을 잘 하고 근검 절약하면서 살고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헝가리 친구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흥! 니네들 조심하는 게 좋을거야. 그렇게 설치다가 언젠가 한번은 큰 코 다칠날이 올거다하면서 경고인지 위협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당시에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그 후에도 그의 말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4.29폭동이 벌어지던 날, 수많은 한인들의 가게가 불에타는 모습을 텔레비젼을 통하여 보면서, 문득 그때 그가 했었던 말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보다 16년전인 19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퍼레이드 행사장의 수수께끼 같았던 한 장면도 되살아 났다.
그때 윌셔가에서 성대하게 벌어졌던 퍼레이드에는, 화려하고 웅장했던 수많은 꽃차들이 각자 나름대로 불과 200년 동안에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전한 미국의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각종 상징물들의 모형들을 만들어, 연도에 운집한 관중들에게 과시하면서 신나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활발하고 힘차게 지나가고 있었다.

미국이 세계의 자동차 왕국으로서 그 동안 그들이 생산해 낸 수많은 각종 자동차들은 물론,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과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자유의 여신상도 있었고, 1968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여 최첨단 우주과학 미국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아폴로 우주선도 그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런 각종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차들 사이로 문득 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대의 무대차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서부개척 당시의 모습을 연출한 무대이었다.

그 무대차에는 일단의 무법자들이 선량한 서민의 집을 습격하고 약탈하여 남편은 집앞의 나무에 목이 매달려 대롱거리며 생사의 기로에서 신음하고 있고, 그의 부인과 아이들은 집앞에서 겁에 질려 어쩔줄을 모르며 울부짓고 있었다.

그리고 무법자들은 그들의 앞에서 술을 병째로 들이키며 큰소리로 낄낄거리면서 여기저기 사방에다 마구 총질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미국의 독립 200년을 축하하는 성대하고 화려한 축제의 마당과는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힘든 그런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하기 힘들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무대차가 지나가자 연도의 많은 관중들이 갑자기 더욱 더 흥분하고 열광하여 큰- 소리로 “Yeah-!! 또는 “부라보-!!하면서 열열히 환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당시 이민 초년생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당혹스러웠던, 이 문명화되고 질서를 잘 지키며 세련된 미국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잠재되어 꿈틀거리고 있는 무법적이며 야성적인 2중의 모습들을 16년 후인 1992년, 4.29폭동이 터져 그 폭동이 확산되고 또 수습되어 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310)968-8945
키 한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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