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엄마가 뿔난 진짜 이유

2008-04-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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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주말 한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탤런트 김혜자 님이 출연하는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입니다. 8순의 할아버지부터 손자, 손녀까지 3대가 살다가 드라마 시작 후 증손자가 한 명 늘어나 이제는 4대가 생활하는 전통 서민 집안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를 메인 캐랙터인 엄마의 시각으로 잔잔하게 이끌어가는 가족 드라마입니다.

평생 시아버님을 모시며 남편과 자녀들, 거기다 어린 시동생 교육까지 뒷바라지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고, 자기 희생을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엄마 ‘김한자’씨의 한숨과 넋두리, 가슴앓이와 눈물, 그리고 순진한 웃음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드라마 방영일인 월, 화요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지 드라마가 재미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김한자’씨가 바로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우리의 엄마들에게는 자신이며, 많은 남편들에게는 자신의 아내이며, 청장년기 자녀들에게는 자신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드라마 속에서 엄마가 드디어 뿔나는 날, 많은 엄마들이 통쾌함 속에 수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갈 것이며, 많은 남편들이 전전긍긍 쥐구멍을 찾을 것이며, 많은 자녀들이 엄마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날의 도래를 흥미진진하게 기다려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김한자’ 역을 기막히게 소화해 내고 있는 김혜자님은 약 17년 전부터 제가 몸담고 있는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1991년 소말리아 방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무려 30여 국가의 굶주린 현장을 방문하고, 톱 탤런트 김혜자가 아닌 소외된 지구촌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기를 더 원하는 분입니다. 전원일기를 마치고 잠시 휴식기를 활용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진솔한 기아현장 체험기를 펴내 깊은 감동을 선사한 분입니다. “내가 먼저 돕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가 있겠어?” 라며 100명의 아동결연 후원, 시에라리온 고아원 설립은 물론, 언론에 회자되는 ‘기부하는 연예인’으로서 누구보다 많은 후원금을 내놓으셨으면서도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질색하는 겸손한 분입니다.

오랜 휴식을 마치고 김혜자 님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분들의 답답함을 대변하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김혜자야” 라는 찬사를 받으며 멋지게 컴백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이 하셨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유명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 유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 아냐? 내가 유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거야”

드라마가 아닌 실제 일상에서는 때로는 소녀처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솔직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실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감당하는 그분이 참 좋습니다. 월드비전 친선대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제가 주는 가르침이 너무 큰 맑은 영혼이시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툭 던진 그 분의 한마디가 생각납니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 아이들이 귀한 만큼 다른 아이들의 생명도 귀한 거잖아. 아이들이 다 죽어 가는데 도무지 도울 생각을 안 해. 많은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말야….”
엄마가 정말 뿔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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