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이슬람에 선 기독교학교(2)

2008-04-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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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교팀은 개교식에 참석한 뒤에 곧바로 준비한 사역을 펼치기로 했다.

한편에서는 학생과 주민들을 진료하고 약을 처방하고 필요한 약을 나누어주었다.

그늘도 없이 뙤약볕 아래서 계속된 사역을 마치고 우리들은 해가 져서야 숙소로 정해진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했다. 게스트 하우스라는 멋진 이름의 이 허름한 건물은 이 선교사가 현지 일군들을 데리고 지은 것이다. 수도도 없고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며 화장실도 없는 이 건물을 우리는 ‘모얄레 힐튼’이라 부르며 감사한 마음으로 지친 몸을 눕혔다.


밤이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정적만이 가득한 모얄레. 하늘에는 별이 쏟아져 내릴 듯 총총한데 나는 시차를 적응하지 못하고 밤마다 새벽마다 시간별로 잠에서 깨어나 칠흑 같은 밤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는 깊은 암흑 속에 깨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 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 안에서 나는 영혼의 쉼을 평안히 누리며 새벽을 맞이했다.

모얄레의 하루는 회교도들의 기도소리로 시작된다. 하루 다섯 번, 아침 4시 반부터 마을마다 설치된 스피커를 통하여 기도소리를 내보낸다. 우리 귀에는 다만 끝없이 중얼거리는 뜻 없는 소음처럼 들리지만 그것이 그들의 기도이다.

이곳은 상수도가 없기 때문에 우기가 되면 모두들 빗물을 받는다.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아끼며 조심조심 커다란 물탱크에 물을 저장했다가 정수 과정을 거쳐 식수로 쓴다. 우리 팀은 하루에 3갤런(1갤런은 우유 큰 것 한 통)의 물을 배급 받아 그것으로 이도 닦고 세수도 하고 목욕도 했다.

받아둔 물을 부대자루처럼 생긴 고무주머니에 담아 나무에 걸어두면 하루 종일 햇볕에 데워져 미지근해진다. 어쨌든 하루에 3갤런이라니! 집에서는 뜨거운 물을 욕조에 철철 넘치도록 틀어놓고도 감사한 줄 몰랐었는데….

현지에서 사역중인 이원철 선교사는 12학년 된 딸과 뇌종양에서 고침을 받았던 아들을 선교사 자녀 기숙학교에 보낸다. 선교사인 경비행기 조종사처럼, 이 학교의 선생님들도 모두 선교사이다. 두 남매 모두 학교를 마치고나면 아프리카에 남아 선교사로 일하겠노라 하나님 앞에 서원한 바 있다.

이 아이들도 방학을 기다린다. 방학을 하면 모얄레 집으로 간다. 학교 기숙사 시설이 훨씬 편리한 줄 알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 집보다는 못하다. 집이라고 와 봐야 TV도 없고 물도 없다. 그래도 집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일곱 살 된 아이들을 처음으로 이 학교에 떼어놓고 돌아올 때 이 선교사는 눈물을 흘렸다.

안 떨어지려고 우는 아이들을 남겨놓은 채 뒤돌아오며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쯤 되면 선교사 부모들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기도한다. “하나님, 이렇게 어렵게 하는 선교이니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해 주십시오.” 학교는 저만치 한없이 긴 내리막길 아래쪽에 있는데, 선교사들은 이 길을 ‘눈물 고개’라 부른다.

이 선교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지고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회교 지역에 앞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과 여러분들의 기도에 의지하여 한 걸음씩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해 주십시오.”

김 범 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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