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온전히 당신의 것!

2008-03-28 (금)
크게 작게
‘또뚜스 뚜우스!’(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께서 평소 삶의 신조로 삼으셨고, 선종(善終)하실 때도 남기셨다는 라틴어로된 간절한 기구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삶이란 것이 항상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살면서 본의든 아니든 갖가지 허물이나 죄업을 끊임없이 짓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죄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는 그 삶 자체가 바로, 죄의 덫에 걸린 형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죄업의 고통에서 벗으나, 마음의 평안과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종교가 가진 고귀한 권능이요, 궁극의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원죄’로 하여 하느(나)님으로부터 일탈된 인간들은 세례라는 의식을 통해, 그 원죄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의 은총을 누리게 되지만, 그러나 인간들은 그 자유를 항상 선용(善用)할 만한 지혜도 없고 의지도 강하지 못함으로 해서 결국, ‘죄의 종’된 자로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죄의 족쇄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솔직하고 겸허한 성찰이 있은 연후에,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통하거나 아니면, 직접 ‘완전 자’이신 하나님께 통회와 회개의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자신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봉헌하여 맡김으로써, 비로소 잃었던 하느(나)님과 하나 되는 ‘은총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이 지은 허물이나 악업을 진실로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수행을 참회라고 합니다. 나아가 참회는 미래에 지을 악업을 미리 예방하고 동시에, 선업을 쌓을 힘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참(懺)이란 한자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語) 크샤마(ksama)를 ‘참마’로 소리 옮김 한 후, ‘참’으로 줄인 것으로 ‘뉘우치다’‘참다’라는 뜻이며, ‘회(悔)’ 또한 ‘뉘우치다’는 뜻으로 뜻 옮김 한 것이라고 합니다. 불교에는 다양한 참회의식이 있습니다마는 먼저, 각자가 짊어진 온갖 죄업은 모두 탐욕과 분노, 교만과 증오 등을 이끈 우매한 망정을 인연으로, 자신의 몸과 입을 통해 지어온 것임을 알도록 합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불경을 독송하거나, 몸으로는 백팔배, 천배, 삼천배 등 예배로써 참회토록 합니다.

또한, 지은 죄의 본질을 직시하도록 하여, 본시 죄의 실체란 없는 것이며 다만, 번뇌 망상과 죄업을 불러일으킨 부정적인 에너지들은,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 일어난 것임을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참모습 또한, 작용할 때 마음이지 작용 이전의 마음은 마음 아닌 적멸의 장으로서, 결국 마음과 죄업의 관계란 ‘뿌리 없는 나무가 불지 않는 바람에 흔들리 듯’, 허상들의 놀음일 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실상을 알고 행하는 사무치는 참회는, 해탈의 장애인 죄업과 그것들을 싹트게 한 자궁인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킴으로써, 종국엔 ‘인격의 완성자’이신 붓다와 하나 되는 대 자유를 얻게 만듭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교의 참회 진언(眞言)입니다. ‘옴 살바 못자 모지사다야 사바하!(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