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기꺼이 길을 잃어라

2008-03-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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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길을 잃어라’는 로버트 커슨이 지은 책 ‘Crashing Through’의 한국판 제목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로버트 커슨이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를 취재하여 ‘에스콰이어’지에 기고한 ‘Into the Sight’를 재구성한 이 책은 한 시각장애인의 인생 여정을 통해 세상을 보는 프리즘을 제공한다. 주인공 마이크 메이는 세살 때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명을 불행의 씨앗으로 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장애를 뛰어넘기로 결심한다. 결국 그는 스키 챔피언, CIA 최초의 맹인 정보분석가, 발명가라는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반전을 가져오게 될 놀라운 오퍼를 받는다. 최신 줄기세포 이식 수술로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큰 고민에 빠진다. 장애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이 없었는데 이제 와 눈을 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눈을 뜨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와 걱정 때문에 그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더욱이 실패 가능성도 크다는 것, 언제든 돌연 다시 실명할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 수술 중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사로부터 경고 받게 된다. 게다가 눈뜬 후의 세상이 반드시 그 전보다 행복한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망설이던 마이크는 마침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못 보는 장애를 벗어버리기 위해 수술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눈을 뜨는 것이 그에게는 또 하나의 모험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위험한 미지의 세계이었다. 겨우 이룩한 안정된 삶이 통째로 뒤흔들릴 만한 위험성이 많은 일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는 맹인이 스키 챔피언이 되고 수많은 것들을 발명해낸 발명가의 모험심이 발동했다.


마이크는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모험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전 호기심이 많습니다. 길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요. 원하는 곳에 가려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니까요”라고 답했다. “기꺼이 길을 잃어라”라는 마이크의 외침은 우리의 심장을 징으로 치는 것 같은 충격을 준다. 그는 또 다른 모험을 시도했다. 그러나 눈을 뜬 순간, 보지 못했을 때의 어려움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는다.

역설적으로 못 볼 때는 겪지 않은 새로운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개안수술 직후, 환자들은 물체의 움직임이나 색깔은 바로 정확하게 감지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이해함에 있어 필수적인 깊이감, 거리감, 공간 지각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들은 보는 것으로 물체를 이해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한다. 대개는 절망했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수술 후 빛과 색채라는 근사한 선물을 받은 환자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그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마이크도 절망 중 부르짖었다. “앞을 보는 건 낯선 세상으로 가는 너무나 길고 불행한 여정이에요!” 그러나 볼 수 있음에 행복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그의 모험은 가치가 있는 시도가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시도하지 않는 마음이다”라고. 기꺼이 길을 잃자는 구호는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다. 방향이 있고 목표가 있다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길을 떠나라는 말이다. 길을 잃어본 사람들이 다시는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알게 되어 그 길을 이용하게 되는 것처럼. 사고를 염려해 차를 몰지 않는다면 무사고 운전자는 될지 모르지만 데스밸리에 핀 들꽃의 아름다움은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자, 우리 기꺼이, 길을 잃을 각오로 길을 떠나보자

김 홍 덕(목사·조이장애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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