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천국에서 만납시다

2008-03-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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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런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아버님이 40대 후반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그렇게 황급히 이 세상을 하직하시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죽음이란 한계상황은 충격으로 우리 가족을 덮쳤다. 당시 나는 아직 중학생이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이 전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사별이 무엇인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봐도 나는 그 당시 그렇게 슬퍼하거나 많이 울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기분 나쁜 꿈꾸는 것처럼 내 육신의 아버지를 무감각하게 보냈던 기억이 유난히 새삼스럽다.
그 후 10년쯤 지나서 어머니께서 재혼을 하셨다. 계부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영주권자였다. 결국 어머니의 새 결혼으로 우리 3남매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던 것이다. 새 아버지라고는 했지만 이미 우리 형제들은 장성한 나이었고, 아무런 정이 없이 그저 무덤덤한 관계로 지금까지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계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지난 월요일에 받았다.
죽음은 늘 구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사람의 죽음인 경우에는 그 질문이 더욱 강렬하게 가슴을 때린다. ‘과연 구원받고 천국에 가셨을까?’
얼마 전 LA를 방문했을 때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계부를 찾아갔다. 당뇨합병증에 폐렴이 겹쳐 앰뷸런스에 실려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입원 후 오히려 증세가 악화돼 의식을 잃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사는 아마도 회복은 힘들 것이라면서 임종을 준비할 것을 암시했다. 나는 덤덤했다. 30여 년 전 육신의 아버지와 사별할 때는 철이 들지 않아서 그렇게 덤덤했었고, 이번에는 정이 없는 계부이기 때문에 또 이렇게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일까.
문병한 다음날 아침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잠에서 깨어 곧바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운명하시기 전에 꼭 구원의 확신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거룩한 부담으로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병실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왔는데요. 예수님 영접하시고 꼭 천당에 가세요.” 말씀 몇 구절 읽어드리고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꼭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눈을 떴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없던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내 눈동자를 응시하고 계신 게 아닌가. 순간 놀라 가슴이 철렁했지만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아버님,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시고 천국에 들어가세요.” 계부는 얼마간 나를 그렇게 바라보더니 다시 의식과 눈의 초점을 잃은 상태로 돌아가셨다.
그날 아침 병실을 나서면서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덤덤했던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그렇게 많은 정을 나누지 못했던 계부였지만 그 분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마음 가운데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지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불신앙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터무니 없이 쉽고 대가 없는 구원의 길로 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철이 들고, 주의 종이 된 지금, 연로하신 계부와의 사별을 통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baekstephe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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