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봄이 오는 소리

2008-03-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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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구리도 겨울잠을 깨고 나온다는 경칩이 지나갔다. 사시사철 기온변화가 거의 없다는 남가주에 살지만 우주의 질서를 어쩌지 못하나 보다. 이곳, 저곳에 꽃가루가 춤을 춘다.
춘삼월엔 분분이 날리는 꽃가루와 죽은 듯 말라있던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온 연녹색 아기순들이 살아있음을 보게 해준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이다.
봄은 ‘보다’의 명사형이다.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생명의 꿈틀거림을 생생하게 보게 해주는 계절이 ‘봄’인 것이다. 건조하다는 캘리포니아에도 며칠간 고마운 빗줄기가 오고 갔었다. 마음의 귓가에, 메말랐던 대지가 꿀꺽 꿀꺽~ 들이키는 맛난 소리가 울릴 때면 피아노 악보의 겹 당김음처럼 성큼 거리며 봄의 기운을 끌어온다.
그 짧고 모자라는 비를 맞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성실한 태도로 봄을 알려줄 수 있는지. 봄이 오는 소리는 까치발 들고 뒤에서 달려오는 사랑하는 연인의 발자국처럼 사랑스럽고 고맙기까지 하다.
춘삼월엔 운전 중에 차창으로 보이는 연녹색 빛깔만 보아도 마음에 흥분이 서린다. 도로변에는 하양, 노랑, 빨강, 색색의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팬지가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탐스럽다. 봄은 굳었던 우리 얼굴에도 행복미소가 피어오르게 하는 기적의 힘을 지녔다.
개구리만 잠이 깬 것이 아니다. 모든 식물과 채소들까지도 생육을 개시한다. 농부의 손길이 바빠진다. 씨 뿌리는 수고가 없으면 결실의 가을에 거둘 것이 없음을 잘 알기에 그는 밭 갈고 김매고 흙을 북돋워 주는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한다.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이 들려주는 봄의 교향곡 때문일까. 봄이 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아무리 밟아도 때가 되면 파랗게 올라오는 잔디가 요즘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의 어두움에 밟혀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미련한 우리들을 보게 하는 거울처럼 느껴져 고맙고 미안해진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는, 봄들판 야생화들의 속삭임도 마음을 두드린다. 마치 이름 모를 그들이 ‘당신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 마음을 빼앗겨, 울고 웃고 하는 것은 아닌가요’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며 안타까운 미소를 보내는 것 같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이다. 하나님이 주신 힘찬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두꺼운 보도블럭 틈새조차 마다하지 않고 봄비와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는 강아지풀들의 정겨운 손짓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미소가 숨어 있다.
봄은 또 순종의 기쁨을 목청껏 노래한다. 군소리 없이 창조의 법칙에 온전히 순복하는 겸손함이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임을, 있는 자리에서 맡겨진 몫을 다하는 것이 행복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겨울을 이기고 돌아온 찬란한 봄을 나의 존재 전체로 즐기면서 홀로 결심해 본다. ‘부지런한 봄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우선순위가 뒤바뀌지 않도록 해야지.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마음을 두어야지. 절대감사, 절대순종을 익히며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와 함께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기뻐해야지. 오늘은 안개꽃 섞은 후레지아 꽃다발을 예쁘게 디자인해서 사랑하는 남편에게 건네야지.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고 적은 마음의 메모와 함께.’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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