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30달러의 기적

2008-03-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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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라는 지명을 아십니까? 사하렌이라는 마을은요? 수라바야라는 어떠신가요? 2008년 ‘비전 트립’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일행 8명이 찾았던 곳, 꿈꾸듯 일주일을 보냈던 곳. 그러나 떠난 후 날카로운 아픔을 동반한 총천연색 기억으로 더 생생해지는 곳. 거기서 우리가 얻고자 했던 비전은 무엇이었으며,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인도네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머문 한국의 호텔방에서 우리가 만났던 얼굴들을 떠올리며, 어느새 가슴에 자리 잡은 그리움이란 녀석을 달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무려 1만7,000여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양 중심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무한한 해양 및 광물자원을 보유한 나라, 그러나 쓰나미와 지진, 화산 등 재난이 끊이지 않은 나라. 인구의 60% 이상이 300달러 미만의 연평균 소득으로 살아가는 나라. 지난 3월2일 우리 팀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26시간을 날아가 만난 사람들, 후원자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세 시간을 동구 밖에서 기다리며, 정성껏 준비한 음식(코코넛, 바나나 등의 열매)을 내어 놓고, 노래와 춤으로 환영해 주던 사람들, 씹으면 입안과 입술이 빨갛게 변하는 피낭이라는 열매를 함께 씹기를 원하며, 진심으로 우리를 형제로 맞아주던 쿠팡이라는 시골 마을의 사람들…. 우리 2008년 월드비전 비전 트립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섭씨 32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90%가 넘는 습도, 열악한 숙박시설이 우릴 지치게 하였지만 그들의 친절함과 순박함, 진심어린 감사는 환경이 주는 피곤을 날려 보내고도 남았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잡아온 바다가재를 보여주며, 우리가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바다가재 양식을 시작, 무려 7배의 소득 증대가 이루어졌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들, 시멘트와 벽돌을 쌓아 만든 초라한 물탱크이지만, 각 가정으로 연결된 그 탱크 덕에 이제는 물을 길으러 수 킬로미터의 산길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이들…. 어느새 그들의 기쁨과 자랑이 우리 것이 되었고, 그들의 환한 미소가 우리 얼굴에까지 전염되었습니다.
수줍은 모습으로 다가와 보내준 후원금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교복과 필기한 공책을 보여주던 학생들, 열악한 학교 시설을 소개하며, 더 필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내역들을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테가사리라는 빈민가, 수라바야라는 화려한 도시의 감춰진 또 다른 얼굴. 1달러70센트의 돈이 없어 출생등록을 못해, 인간의 기본권마저 잃어버린 아이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 속에 4달러50센트에 몸을 파는 생존의 현장에 던져진 아이들, 그 아이들이 후원금 30달러가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주었다며 감사의 몸짓을 춤에 담아 우리를 환영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우리의 단순한 후원이 그들에게 그토록 절실함이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서 선글라스를 끼고 추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 위로 내 딸아이의 얼굴이 자꾸 겹쳐져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30달러의 기적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환한 미소가, 더 나은 삶이 한달 30달러의 결연 후원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끼니 식사 값에 지나지 않는 그 후원금이 기적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트립에서 분명히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작은 나눔이 큰 기적을 만들 수 있으며, 그 나눔을 통해 지구촌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찬양 사역자 최명자 사모가 부르던 ‘당신들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아요, 절망하지 말아요, 힘을 내세요’라는 노래가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아시아후원개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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