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의 씨앗은 살아있다

2008-02-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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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이른 새벽,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남대문이 타고 있어!”
별안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는데 서울의 남대문이 불에 타고 있다고 숨 넘어가는 소리가 작은 전화기에서 터져 나왔다. 강력한 전압에 감전된 것처럼 간절한 마음담은 번개기도가 시작되었다. “아! 주님 안돼요! 제발 불 좀 꺼 주세요. 주님!”
그리고 아침 8시, 1부 예배를 마쳤는데 남대문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하는 탄식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온 몸이 떨리면서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온 몸은 소금기둥처럼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대한민국 국보 1호’였기에 그랬을까? 왜 이렇게 서글프고 가슴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겼던 ‘민족의 자존심’ 숭례문! 그렇게 모진 세월동안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줬던 의연함은 어디가고 어쩜 이렇게 짧은 한순간에 흉물스런 잿더미로 내려앉았는가.
늘 그렇듯이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과연 예전처럼 멋들어진 기품의 남대문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 설계도면이 있어 다시 짓는다 해도 오랜 세월을 견뎌낸 그 인내와 의연함은 어떻게 되살릴 수 있단 말인가. 610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두 눈뜨고 새겨 넣었을 그 많은 역사의 이야기들이 아직도 잿더미 속에 블랙박스로 담겨져 있을 것만 같아 한 걸음에 달려가 헤쳐보고 싶었다.
태안 앞바다 모래밭에 엉겨 붙은 시커먼 기름덩어리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설상가상 절망스런 아픔이었다. 희망찬 무자년 설날 연휴에 국민 모두의 눈물이 강물 되어 가슴 속까지 홍수가 나게 했던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계속 들려오는 뉴스 속보가 더더욱 가슴을 멍들게 한다. 방화를 저지른 사람이 철없는 젊은이가 아닌 70대 노인이라니…. 그것도 사사로운 감정을 못 이겨 국보급 문화재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국보 1호 문화재’를 시너 1통과 일회용 라이터 1개로 한순간에 무너지게 했다는 사실도 분통 터지는 대목이다.
그토록 중요한 문화재를 어쩜 그렇게 소홀하게 지켰는가? 좀 더 빨리 민첩하게 대응했더라면 더 큰 손실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진상이 파악될수록 안타까움만 더해 간다.
초기 진화작전 실패, 방화장비 문제, 안전점검 소홀, 진화훈련 부실 등 여러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가슴 아픈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바로 보수해서 고친다면 더 이상의 손실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지만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해답은 우리 안에 있다. 아직 우리에겐 희망의 씨앗이 남아있다. 이미 불 타 버린 것을 어떻게 하랴! 숭례문은 불에 타버렸지만 국민적 상실감과 아픔을 모아 다시 한 번 사랑의 꽃을 피워야 한다. 아직 타버리지 않은 우리의 고고한 기상과 국민적 자긍심을 기도로 승화시킨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고증을 거친 숭례문의 미소가 꽃처럼 아름답게 재건되리라 믿는다. 아픔은 한 번에 족하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죄악이다. 문제점만 이야기하지 말고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 명쾌한 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또한 즉시 일어나 움직일 수만 있다면 건강의 회복은 시간 문제다.
아름다운 나라, 복된 나라 대한민국! 오늘도 희망을 붙잡고 깍지 낀 기도손에 힘을 더한다.

정 한 나(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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