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 빌 게이츠 따라잡기

2008-02-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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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4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 기조연설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의 회장인 빌 게이츠가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전혀 새로운 발상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주창하여 21세기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자본주의의 방향이 부유한 사람들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전 세계 10억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말했습니다.
즉,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개념을 수정하여 부자뿐 아니라 빈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도 제시함으로써 이 제안이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라 ‘지구촌’이라는 마을의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빌 게이츠 회장의 연설을 지면을 통해 접했을 때, 전통적인 자본주의가 무엇이며, ‘창조적 자본주의’는 무엇인지, 또한 그것이 과연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연착륙할 것인지 등의 이슈는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지러운 일상을 사는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는 나에게는 그러한 거창한 주제까지 고민할 여유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라는 개인이 준 감동은 실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IT 기업의 회장이요, 세계최고 갑부요,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집단의 일원입니다. 그런 그가,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소외된 사람, 어쩌면 그의 눈에는 하찮은 존재들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부러움과 시샘, 그리고 부끄러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왜 우리 민족의 지도자 중에서는 이런 멋진 발상과 통찰력, 없는 자들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하는 사람이 없을까”하는 갈증과도 같은 답답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 민족을 이끌어가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경영하는 기업가들이 있으며,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가깝게는 거대 교회를 이끌어 가는 교계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외된 자들의 삶에 대해 안타까움과 책임감을 역설하는 지도자를 본 기억이 제게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각종 비리, 폭행, 불법, 분쟁 등과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거나, 얼굴을 가리며 재판정에 출두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들만이 뇌리를 스쳐갈 뿐입니다.
빌 게이츠는 오는 7월 이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에서 물러나 자신과 부인의 이름으로 세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회장으로서 자선 활동에만 전념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아직 50대 중반의 왕성한 나이에 더 가치 있는 삶을 찾아 떠나는 그의 해맑은 모습을 통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제를 봅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 중에서 또 다른 빌 게이츠를 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큰 그림으로 세상을 보고,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품는 그런 폼 나는 지도자 말입니다.
“그런 분 어디 없수?”

박 준 서 (월드비전 아시아후원개발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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