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아이덴티티’의 중요성

2008-02-08 (금)
크게 작게
알고 보면 참 요상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한 순간 하늘을 날 것 같은 자신감이 들다가도, 어떤 날에는 한없는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삶 안에 서로 다른 이런 느낌들이 공존하기에 인간은 불안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출렁거리는 대양의 바닷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 개체가 탈바꿈하는 10대의 사춘기 시절에는 이 굴곡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사춘기는 마치 무성하게 가지가 뻗어가는 나무와 같아서 바람을 더 탈 수밖에 없는 시기다.
그렇기에 ‘뿌리’가 땅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어야만 광풍에 나무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이 나무의 뿌리가 바로 인간 개체의 ‘아이덴티티’(identity)다. 한 마디로 자기 존재를 지탱하는 자아 정체성이란 말이다. 나는 ‘누구’이며, 내 삶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또 내가 살아가는 ‘존재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 바로 ‘아이덴티티’란 말이다.
인간은 이 존재 의미가 분명할 때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
알고 보면 이민자의 삶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이 ‘정체성’의 문제다. 이민 오기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환경과 삶의 변화는 이제까지 체험해 본 적이 없었던 세찬 바다의 파고이기 때문이다.
사업체의 중견 간부였던 사람이 LA에 와서 구멍가게를 하거나, 평생 사무직에 종사했던 사람이 주유소에서 펌프질을 하면서 겪게 되는 자아 정체성의 흔들림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4가지 욕구(needs)가 있다. 즉, 남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 소속되고 싶은 욕구, 자율성을 갖고 싶은 욕구가 바로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네 가지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과 존재 의미를 찾게 되나, 반대로 이 욕구들이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면 분노와 슬픔, 외로움과 자기 상실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덴티티는 바로 이 네 가지 기본 욕구의 충족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꽃나무가 자라기 위해 따스한 햇볕과 적당한 수분과 토양이 필요하듯, 인간도 이 네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존재 의미가 확실해지고, 존재의미가 뚜렷해진만큼 자아 정체성이 튼튼하게 뿌리를 뻗게 된다는 소리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누군가에게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 신바람 나는 일이다. 서로의 역할과 장점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자. 사랑은 ‘관심’이며 ‘눈길’이다.
자녀와 배우자가 소속감을 필요로 할 때 ‘함께’ 있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시간과 마음을 주는 대신 돈과 물질로 보상하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온다.
따스한 햇빛을 받고 작은 새싹이 자라 거목이 되듯, 한 인간도 따뜻한 눈길과 관심을 받아야만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 행복은 자기의 존재 가치가 뚜렷해지고, 존재 의미가 확실해 질 때 갖게 되는 느낌이다. 그 때문에 자아 정체성이 중요하다.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져야 당당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