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바울을 배우다

2008-01-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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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그리스에 다녀왔다.
동구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사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그분들을 섬기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내가 그동안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왔던 지역은 아프리카의 빈민가,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촌 등 의료혜택이 절실한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그와는 전혀 다른 환경인 지중해 연안 고린도의 안락한 호텔에서 첫 밤을 보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모님들은 주변국인 불가리아, 알바니아, 코소보, 루마니아 등지에서 오셨으며 LA에서 떠난 봉사팀은 오랫동안 이 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세심한 준비를 해왔다.
나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치과진료 장비를 준비하느라 짐이 늘었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열악한 지역으로 나갈 때는 밀려오는 수백명의 환자 때문에 간단한 치료밖에는 해줄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복합적이고 충실한 치료를 해 드릴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첫날부터 입을 벌리고 진찰을 받으라 하면 그분들이 싫어할까? 걱정과는 달리 하나님은 오히려 사모님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로 삼게 해주셨다. 평소 치아건강에 관한 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사역지에 남아 있는 남편 선교사님들이나 자녀의 치아 문제까지 상담을 하였다. 나는 한 분 한분 스케일링까지 해드릴 수 있었는데 아울러 그 시간에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지금껏 만난 선교사들은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소명을 위해 사는 분들이다. ‘그분’의 부르심만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좋은 학벌과 지위를 배경으로 육신의 안락과 명예를 한 몸에 누리며 이 세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한낱 스러질 이슬로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이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2박3일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서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을 때 여러 사모님들은 주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예비하심, 보호와 인도하심을 겸손히 간증하셨다. 나 역시 회복의 기쁨이 마음 가득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 분의 간증은 아직 내 귓가에 쟁쟁하다. “현지에서 사역하는 동안에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문화적인 삶을 오랫동안 꿈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여기 호텔에 와서… 목욕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따뜻한 물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나머지 일정 동안 바울의 전도여행지를 따라 고린도와 데살로니가를 방문하고 LA로 돌아왔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6개월이나 살았다고 한다. 좋아서 산 것이 아니라 타락한 채 죽어가는 하나님 백성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과 함께 걸어 다녔을 아볼로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들의 믿음을 떠올려본다. 나는 고작 한 주일 선교여행으로 치과 오피스를 비우는 동안 주님은 나대신 환자들을 지켜주시고 병원도 나보다 백배 천배 잘 운영하고 계셨다. 내가 아주 미약한 부분이나마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그분은 넘치도록 큰 은혜로 갚아주신다.
그렇다면 그리스에서 만난 사모님, 남편 선교사님들의 헌신을 주님께서 모르실 리 없다. 이분들이 드린 헌신이 천만 배, 셀 수 없는 복으로 되돌려질 것을 생각해 본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가진 것 모두 다 내어놓고 땅의 끝 끝까지 나간 가장 ‘가난한’ 선교사들이 아닐까.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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