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큰일 났다! 해가 저문다

2007-1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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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다! 해가 저문다.
사진작가 황규태님이 화면 가득, 매화꽃이 활짝 핀 모습을 담은 그의 작품에, ‘큰일 났다! 봄이 왔다’라는 제목을 달아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기막힌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살짝, 절기를 바꿔 보았습니다.
그래. 큰일 났다! 해가 저문다.
묵은 년(年) 보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아니 벌써, 이 년(年)도 뉘엿거리다니, 매 년(年)이 그러했듯이 허허! 이 년(年)도 미친 년 널뛰듯이 뛰어 버렸구나. 그래, 그것 봐라! 이 년(年)도 역시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1856-1950)가 그의 묘비에 떨어놓은 마지막 익살입니다.
그는 건방지고 불손하며 항상 자기 과시적인 일면이 있었다고 하지만, 반면에 젊은 날의 역경을 딛고 언제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인연의 끈을 놓을 때조차도 생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을 예의 예리하고 쾌활한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묘비 위에 남겨 놓음으로써, 그의 범상치 않은 천재성과 품격을 지닌 통쾌한 해학을 세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킨 위대한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매년 새해를 창대하게 시작하지만, 언제나 미미하게 그 나중을 맺습니다.
물론, 더러는 성경 말씀대로, 미미하게 시작해서 기고가 만장한 창대함으로, 그 나중을 맺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언제나 우물쭈물 하다, 한 발 뒤늦게 난리 브루스(?)를 추게 되어, 될듯 말듯, 안 되는 일만 오롯이 보다가, 씁쓸하게 또 한 해를 보내고는 합니다.
그러나 한 생각 야무지게 돌려보면, 그 ‘우물쭈물해서 그럴 줄 안 일들’이 결코 큰일 날 일도, 씁쓸할 일도 아님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저문 해’가 아니라, 사람들의 ‘저문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간이란 것이 저문 해 지면 진 달 뜨고, 뜬 달 지면 진 해 또 뜰 뿐인 것을, 그냥 그렇게 그런 것일 뿐인 것을,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쪼개고 쪼개어서 한 시간이다 하루다 일년이다, 아니면 묵은해와 새 해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서, 자신들의 마음을 스스로 신산스럽게, 마음 저물고 스산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들은 과연 있기나 한 것 일까.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 일까.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무한한 접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 그 시간이 없는 한 점에서 인간의 생활이 영위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정신력을 그 현재에 집중시켜야 한다.”
샤카무니 붓다께서는 이미, 금강경(金剛經)이란 경전에서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설하셨습니다.
해서, 붓다께서는 무엇보다 지나간 과거에 회한과 미련을 두지도 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도 말 것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의롭고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대! 길은 다만 외줄기. “Here and Now!”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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