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빈 방 있습니다

2007-1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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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화려한 성탄 장식불빛이 반짝거리고 귀에 익은 캐롤에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다.
모두들 주고받을 선물을 준비하고 기대하느라 몸과 마음이 들뜨고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는 설레임이 교차되며 오랜만에 전화로 안부도 묻고 사랑 우표 부쳐서 우체국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일년 365일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고 하지만 그래도 12월이 들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특별히 이맘때면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덕구’라는 소년이다. 다른 친구들보다 행동도 느리고 지능도 조금 떨어져서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수함과 따뜻한 가슴을 소유한 아이다.
그런데 덕구를 신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성탄절 이브에 교회에서 하는 성극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비록 한 마디의 짧은 대사를 맡았지만 밥 먹는 것도 잊으면서 하루종일 그 대사를 중얼거렸고 연습 때마다 얼마나 씩씩하게 대사를 외쳤던지 모두들 칭찬이 자자했다.
드디어 성탄절 이브가 되어 막이 오르고 연극이 시작되었다. 만삭이 된 마리아를 부축해서 남편 요셉이 여관 문을 두드린다.
“여보세요! 빈 방 있습니까?”
여관집 주인 역을 맡은 덕구가 드디어 대사를 할 차례다. 연습 때처럼 문을 열고 “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덕구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별안간 덕구가 “빈 방 있습니다”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방이 없다고 해야 요셉이 다른 여관을 찾다가 결국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고 연극이 끝나게 되어 있는데 덕구 때문에 연극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때,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덕구의 독백이 이어진다.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내가 연극 망쳐 놨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거짓말을 해요. 우리 집엔 빈 방이 있거든요. 아주 좋은 방은 아니지만…. 그건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어떻게 예수님을 마굿간에서 나시라고 그래요. 난 정말 예수님이 우리 집에서 태어나시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환희에 가득 차서)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예수님이 내 방에서 태어나신다니! 얼마나 신나요! 그럼요, 난 내 방도 쓸구요, 걸레 빨아서 닦을 거예요. 내 방 비워놨을 거예요. 난 예수님이 좋아요.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이 최고예요. 예수님은 내 죄 땜에 죽으셨잖아요. 흑흑…. 내가 연극 망쳐놔서 선생님하구 친구들이 속상할 거예요. 속상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내년에 또 하면 안 틀리고 잘 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이젠 다시 안 시켜줄 거예요. (힐끗 웃으며)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한 번 해 본 게!”
“아! 빈 방 없습니다!”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연극이 끝난다.
어린 아이들이 어설프게 연기했던 연극의 한 장면이었지만 매년 성탄마다 내 마음을 흔드는 한 마디가 되어 버렸다. 크리스마스는 Christ와 Mass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예수님을 경배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성탄절엔 주인이 빠져 있는 느낌이다. 쏟아지는 성탄 카드에도 예수의 모습은 거의 찾기가 힘들고 선물을 주고받는 송년모임과 흥청거리는 파티로 12월이 지나가고 있다.
주인 없는 빈 집에서 벌어지는 파티! 정작 채워져야 할 예수가 사라진 성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음의 방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한 계절이다. 마음뿐 아니라 여유가 있다면 게스트룸도 하나쯤 만들어 오고가는 나그네를 쉬게 할 수 있다면 ‘빈 방’의 넉넉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덕구에게 성탄카드를 보내주고 싶다. “덕구야! 우리 집에도 빈 방 만들어 놨어. 메리 크리스마스! 사랑해!”라고 적어서.

정 한 나
(세계선교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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