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성취 신앙

2007-12-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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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유력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페인 구호가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라고 한다. 그 후보의 부인이 1,000만원 이상 가는 핸드백을 갖고 다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어느 신문의 여기자는 돈 있는 여자가 좀 비싼 핸드백을 갖고 다니면 어떠냐고 후보 부인을 옹호하고 나섰다.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평안함을 누린다는 선비들의 안빈낙도(安貧樂道) 사상이나,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을 이상으로 하고 있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를 배우며 성장해 온 필자는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러한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문으로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세상의 윤리가 황금지향적, 출세지향적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기독교의 윤리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우리 구주 예수는 세상적 의미에서 돈을 번 분도 출세를 한 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가난했고 멸시 당했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으며, 이제 우리에게 그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성공은 세상 기준에서의 성공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기독교가 제시하는 인간상은 예수 믿어 부자 되고 출세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신동아그룹의 회장 부부가 기독교를 위해 어마어마한 액수의 헌금을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간증을 하고 교계를 휘저으며 다녔는데, 결국 옷로비 스캔들에 연루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엄청나게 가린 적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랜드의 신화를 만들고 재벌그룹 이익의 10분의1을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집회를 하고 다니던 회장님이 얼마 전 비정규직 근로자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분들이 한국 기독교를 위해 공헌하신 것도 있겠지마는 성취신앙을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것처럼 인식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는 기독교에 끼친 해악도 상당히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들의 책임보다도 이들을 한국 기독교의 영웅으로 추켜세운 교계 지도자들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믿는다.
한국이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는 동안 한국 기독교도 양적 팽창을 했는데, 이런 가운데서 기독교는 안타깝게도 성취신앙, 기복신앙으로 치장함으로써,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고 가난한 자를 위로하는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출세한 기독교인, 부자가 된 기독교인들에게 감히 말한다. 당신들은 기독교의 영웅이 아니라고. 당신들의 부를 창고에 쌓았다면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야 한다고. 그래서 강대상에 서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라고.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들, 헌금 많이 하는 사람들을 단에 세우기 전에, 고통 가운데서 헌신을 보인 사람들, 혹은 세상 것을 버리고 고통 받는 자들과 삶을 나누는 사람들을 참 기독인의 삶으로 소개해야 한다고. 교회는 돈 있다고 사치스럽게 사는 크리스천들을 꾸짖으면서 근면하고 검소한 삶, 가난한 이웃의 편에 서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박 문 규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 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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