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 산타의 추억

2007-12-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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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홍 덕
(목사·조이장애선교회)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산타였다.
대학생 시절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였다. 한번은 교회부설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는데 섭외를 한 산타가 일이 생겨 못 오게 되었으니 나에게 급히 와 산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호출을 받고 허겁지겁 유치원에 도착해 보니 행사는 이미 시작되고 곧 산타가 등장할 차례였다. 원장님이 건네준 산타복과 모자로는 어색해 겨울 코트를 껴입어 몸을 풍성하게 만들고 뿔테 안경에 솜으로 큰 수염을 해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솜수염이었는데도 아이들은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만져보자고 대드는 통에 진땀을 빼야 했다. 아이들 앞에 “호호호” 하며 등장을 하니 유치원생들은 일제히 “산타할아버지 안녕하세요”하며 반기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한명씩 부르며 선물을 나누어 주면서 평소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하며 “다음에 할아버지가 올 때 고쳤는지 알아보고 안 고쳤으면 선물을 안 줄거야”하니까 아이들은 그야말로 토끼눈이 되어 놀라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너무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년에도 꼭 오세요”하며 헤어지기를 못내 섭섭해 했다. 원장님은 “김선생, 그런 끼가 있는지 미처 몰랐어. 매년 산타를 해 줘야겠어”하며 그 다음해도 부르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웃 유치원에도 소개를 하여 일약 ‘유명 산타’가 되었다.
그러나 실감나는 산타 연기를 하면서 마음의 번민은 쌓여갔다. 산타의 말솜씨와 위엄을 쌓아가면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산타가 크리스마스에 와서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선물을 주고 삶의 가르침을 주고 또 계속 지켜 보겠다며 산타의 권위를 선포했으니 그야말로 예수님의 자리를 가로채 꿰차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도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산타를 기다리게 되었고 산타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였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교회 안에서 산타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했다. 그 후 산타가 교회 안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산타추방 운동’을 하면서 산타직도 자진 사퇴(?)를 하였다.
지금도 사역을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본질과 비본질이 섞여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사람들은 비본질적인 것을 더 즐기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지도자의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본질적인 문제만 고집하다보면 따르는 사람들이 싫어하고 지루해 하며 비본질적인 것에 무게를 두면 사역의 방향이 흐려지게 되니 말이다.
한해를 결산하면서 과연 나는 올 한해 얼마나 본질에 충실했는가 점검해 본다. 조이센터를 시작하면서 ‘본질에 충실하겠다’라고 다짐했던 나의 사역 모토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우리의 사역에서 산타적인 것을 추방하고 예수님을 중심에 두었는지 철저히 되짚어 본다. 2007년엔 묵직한 선교의 내용들이 많이 펼쳐졌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선교의 본질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자평하면서도 선교의 본질의 효과가 마음껏 드러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보조적인 지원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뼈저리게 느낀 한해였다. 복음전파와 이것을 가능케 하는 인적, 물적 자원의 동원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과 시험이 존재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든다. 엘리야가 큰 권능을 행하고 깊은 무력감에 빠졌던 것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새 에너지가 절대 필요함을 느끼며 새해에는 조용한 영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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