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풍파 속에서 평안한 영혼

2007-12-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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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우리가 애창하는 이 찬송가의 가사를 작사한 사람은 호레이티오 G. 스패포드입니다.
지난 주 퇴근길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 ‘패밀리 크리스천 북스토어’에 들렀다가 우연히 ‘찬송가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적힌 DVD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구입, 집에 돌아와 그 DVD를 보게 되었는데, 그 첫 스토리가 위 찬송가 가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약 10분여의 시간이 흘러 다음 곡으로 넘어갈 즈음 제 가슴은 그 찬송에 대한 새로운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828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패포드는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십대의 나이에 이미 성공한 부동산 실업가요 변호사로서 명성을 드높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이에 귀여운 1남4녀를 두었던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던 그의 가정에 시련이 닥치기 시작한 것은 1870년 겨울이었습니다.
3세 아들이 성홍열로 세상을 떠나고 몇 개월 후 1871년에는 시카고 대화재가 일어나 그의 모든 부동산이 불에 타 버립니다. 낙심 속에서도 그는 가족들과 함께 1873년 평소 전도협력자였던 D.L. 무디 선생의 영국 집회를 위해 뉴욕에서 출항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프랑스 증기선인 ‘Ville de Havre’에 승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승선 직전 긴급한 사업상의 미팅 때문에 아내와 네 딸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다음 배로 합류하기로 합니다. 그로부터 약 9일 후 그는 아내로부터부터 전보를 받게 됩니다. “Saved alone.”(혼자 살아남았음)
내용인즉, 그 배가 뉴욕항을 떠난 지 이틀만에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좌초하여 무려 226명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는 참변이 발생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4명의 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으며 아내인 앤만 극적으로 구조되어 짧은 소식을 보냈습니다.
스패포드는 죽음보다 무서운 절망감과 참담함을 지닌 채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같은 항로의 배에 몸을 실었고 네 자녀를 잃어버린 해역을 지나가게 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는 불현듯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고, 펜을 들어 그 느낌을 적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위의 가사였던 것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이 순탄하든, 험난하든,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게 된 지금, 나의 영혼은 평안해.’
마치 현대판 욥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DVD를 보는 내내, 저는 자신에게 반문했습니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상황에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제게는 그런 고백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백의 원천은 무엇일까?’ 며칠 간 고민한 끝에 찾아낸 답은 바로 욥기에 있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1장 22절)
스패포드는 절망의 순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고백 이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평생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살았고, 다시 얻은 그의 딸 버타 역시 그 곳에서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며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 영혼 평안해…’를 조용히 따라 부르는 지금, 스패포드가 누렸던 영혼의 평화가 느껴지고, 팔레스타인의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박웃음을 웃는 그의 밝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제가 그 위대한 깨달음의 희미한 단서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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