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비움의 계절

2007-12-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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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로 갈수록 점점 바빠지고 무엇이 그리 분주한지 이리저리 쫓아 다니기에 바쁜 것 같습니다. 각종 송년회에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겹쳐지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가게마다 거리마다 물건들과 사람이 넘쳐납니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연말분위기는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올수록, 연말이 깊어 가면 깊어갈수록 분위기도 자못 화려합니다. 집집마다, 가게마다, 거리의 가로수들까지 작은 전구들로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을 합니다.
두레마을 식구들은 비움의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그간 살아온 것들 중 쓸모없고 버려야 될 것들은 버리고, 또한 우리 몸과 마음에 있는 온갖 쓸모없는 것들을 비우고, 우리의 근본을 살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과일나무 가지치기도 시작했습니다. 겨울로 들어서는 이때에 과일나무에 매달려 있던 과일들은 이미 다들 나무를 떠났고, 나뭇잎들도 조그마한 바람에도 나무를 떠나갑니다. 나무는 겨울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내년도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해 우리들은 나무가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불필요한 나뭇가지들과 곁순들을 제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버리고 떠난 나뭇잎들은 땅과 만나면서 자기를 죽여 나무에 필요한 자양분으로 거듭날 것이고, 우리들은 과일을 먹은 만큼의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거름도 줄 것입니다.
올 5월 중순부터 살구를 시작으로 매실과, 자두 세 종류, 복숭아 세 종류, 무화과, 아몬드, 적은 양이었지만 사과와 배, 포도, 대추, 감, 그리고 석류를 마지막으로 수확을 잘 끝냈습니다. 과일나무들은 나름대로의 자기들의 존재 이유를 충실히 살아냈습니다.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기들을 그 섭리에 그대로 내어 맡길 뿐만 아니라 열매를 냄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 것입니다. 봄이면 가지마다 붙어있는 눈을 뜨고 꽃과 잎을 내놓기 시작하고 꽃 진 자리에 열매를 매달고 뜨거운 여름 내내 그것을 무르익게 하는데 온 나무가 최선을 다하고, 열매 딴 이후, 저무는 가을녁부터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의 모습은 그 자체가 거룩한 모습입니다.
겨우 내내 이제 빈 몸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뿌리의 삶에 충실할 것입니다. 마치 겨우내 동안거하는 스님들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도 계절에 따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비움이 시작되고, 고요함 가운데 자기수행이 시작되는 이 계절에 분주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화려함으로 연말을 지낼 게 아니라 조용히 기도하면서 지난 한해를 반성하고 내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함으로써 절대자이신 그분을 좀 더 겸손하면서도 깊이 있게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요?
자연은 하나님의 형상(로마서 1:20)입니다.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 인생이 어떠해야 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철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철든 삶을 살기 위해 철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른 이들 철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철든 삶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때로는 급해야 될 때도, 바쁘게 가야 할 때도, 아름다운 모습을 가져야 할 때도 있지만, 쓸쓸하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하늘의 은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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