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접근금지 (하)

2007-12-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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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소리가 울리면 제일 먼저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물론 반가운 사람들의 이름이 뜨면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지만 지역번호 3으로 시작되는 번호는 일단 가슴이 바싹 오그라들면서 조심스럽게 받게 된다. 지역번호 3으로 시작되는 번호는 승욱이가 가는 UCLA 병원과 학교, 그리고 기숙사가 모두 지역번호 3으로 시작이 된다. 병원과 학교와 기숙사에서 전화가 왜 걸려오겠는가?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제일 먼저 전화가 걸려오는 곳이기에 언제나 가슴 철렁이다.
고장 난 승욱이의 와우이식 프로세서를 UCLA 병원에 맡겨 두고 온지 일주일이 겨우 지났는데 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빌려온 프로세서에 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다. 승욱이가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는 전화에 당장 가보지도 못하고 저녁시간에 기숙사로 가서 확인해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승욱이가 아무 것도 못하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퇴근하자마자 기숙사로 달려가 가지고 간 파트를 다 갈아 끼웠는데도 전혀 기계가 작동을 안 한다. 혹시? 그것이 문제? 일단 아침 일찍 UCLA로 달려갔다. 다녀간 지 얼마 안 되는데 불쑥 다시 찾아온 나를 승욱이 담당 청력사 지나가 의아한 듯 쳐다본다. “너무 자주 오지? 또 작동이 안 되네. 파트는 새 것으로 다 교체를 했는데 전혀 켜지질 않아. 혹시 정전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다 지워진 건 아닌지.”
프로세서는 작은 파트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라도 고장 나거나 끊어지면 새 것으로 교체를 하면 되는데 문제는 정전기다. 프로세서나 선의 일부분이나 귀에 달고 있는 자석이나 어디 부분이던지 정전기에 노출이 되면 프로그램이 전부 날아가 버리는 것이 와우이식의 제일 큰 단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다시피 남가주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일년의 대부분인데 그 가운데에서 정전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승욱이를 보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남가주 지역에 산불주의보가 내려지면 남들은 산불을 걱정할 때 승욱이 엄마는 정전기를 걱정하게 된다. 옷은 항상 면 옷으로 입히고, 승욱이가 제일 좋아하는 미끄럼 타기는 포기한지 2년이 넘었고, 풍선을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모든 물건에 정전기와의 접근금지가 항상 생활화되어 있다.
무정전기실에서 가둬 키울 수도 없는데 지난 2년간 건조한 이곳 LA에서 단 한 차례의 정전기로 프로그램이 지워진 일이 있었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특별히 관리를 해 주었고, 기숙사는 말할 것도 없고, 엄마인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다들 그동안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것이다.
남들은 와우이식을 하면 바로 듣고 말하는 줄 안다. 와우이식을 통해서 승욱이는 물론 잘 듣게 되었지만 그것을 관리해 주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다. 매일매일 프로세서의 배터리를 갈아 끼워 주어야 하고, 자는 시간에는 프로세서를 잘 빼서 보관해야 하고, 물이나 습기가 들어가지 않게 잘 관리해 주어야 하고 귀 뒷부분에 전자 칩을 넣은 부분이 벽이나 뾰족한 곳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시켜야 하고, 고장 난 파트도 수시로 갈아 끼워줘야 하고 정기적으로 청력 테스트를 받으러 가야 하고, 거기다 정전기에서의 접근 금지까지.
이렇게 어려움을 감수하고도 꿋꿋하게 전진을 하는 것은 승욱이 자신이 이 와우이식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기계를 자신에게 끼워야 들을 수 있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와우이식만이 유일한 듣는 수단인 것을 승욱이도 알기에 말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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