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만남’의 은총

2007-1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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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쟌발장은 성자 같은 ‘미리엘’ 주교를 만난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이를 훔치다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감옥에 들어가 46세가 될 때까지 19년이라는 인생의 황금기를 빼앗겨 버린 쟌발장이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온다. 허나 전과자인 그를 반겨주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개집에서조차 쫓겨났다.
부랑자로 전락한 그에게는 갈 곳이 없다. 그런 그를 따뜻이 맞아준 단 한 사람이 바로 미리엘 주교였다. 미리엘 주교는 평생을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와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눈길을 주면서 살았다.
그에게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중환자실처럼 보였다. 그는 곳곳에서 신음소리를 들었고 그 상처를 치료하려 했다. 세상에는 황금을 캐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교는 연민을 캐내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온 세상의 고뇌와 슬픔이 온통 그의 광산이었다. 미리엘 주교에게 갈 곳 없는 전과자 쟌발장은 더 이상 외면해야 하는 부랑자가 아닌, 자신이 캐내야 할 금강석을 안에 품고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흙투성이 원석이었다.
정말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인간일수록 존경에 굶주려 하는 법이다. 그런 쟌발장의 옆에 앉아 미리엘 주교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당신은 굳이 자신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좋았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요!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않고, 다만 고통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볼 뿐이오. 나는 당신이 이름을 말해주기 전부터 당신 이름을 하나 알고 있었소. 그것은 ‘내 형제’라는 이름이었소.” 19년간의 긴 세월 동안 추위와 어둠 속에서만 살아온 한 영혼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그처럼 환대하며 하룻밤을 재워준 주교관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 쟌발장이 다시 붙들려 왔을 때도 “왜 당신에게 준 이 은촛대는 잊고 가져가지 않았소?” 하며 손과 다리를 떨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잊지 마시오. 이 은그릇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데 쓰겠노라고 내게 약속해 준 일을 말이오” 라고 속삭여 주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입니다. 내가 값을 치르는 것은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어두운 생각이나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하느님께 바치려는 것입니다” 라고 덧붙였다. 이 한 마디에, 드디어 그는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그 결과 쟌발장은 20년 후 가난한 과부와 병든 고아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들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파리 인근 어느 도시의 훌륭한 시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전 어느 날, “세상의 어린 양이 저기 가신다”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두 청년이 ‘예수’를 따라갔다. 하룻밤을 그 분과 함께 보낸 요한과 안드레아가 그 다음날 각자 돌아가 자기 형들에게 했던 말이 “우리는 ‘그 분’을 만났소”였다.
조상 아브라함 시절부터 기다려온 하느님의 약속인 ‘구세주’를 만났다는 말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결과 그분의 제자가 되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고, 마침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됐다.
그렇기에 ‘만남’은 은총이다. 우리는 정말 ‘잘’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도 다른 사람의 좋은 만남의 ‘대상’이 되어 살아야 한다. 부부도 그렇고, 친구 사이도 그렇고, 국민과 지도자 사이도 마찬가지다.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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