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침묵과 고독으로의 초대

2007-1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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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에 들어선다.
12월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준비해야 될 일들도 많고, 또 한해가 다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봐야 할 사람들, 크리스마스 샤핑, 송년모임 등이 꼬리를 문다. 그래서 분주한 마음으로 시작된 마지막 한 달은 쏜살처럼 지나가 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시간은 ‘침묵과 고독의 시간’이다. 17세기의 뛰어난 과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파스칼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혼자 조용히 방에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요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혼자 남겨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홀로 남았을 때 찾아오게 될 침묵과 고독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끄럽고 바쁜 가운데 있기를 더 좋아한다. 말로는 그런 것들이 지겹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고 남을 판단하며 비교하는 관계의 시간을 보내기를 더 좋아한다. 거기에 대부분의 세월을 소모하며 산다. 또 인터넷과 셀폰이 발달된 요즘은 혼자 조용히 방에 있어서도 실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과 셀폰을 통해 수시로 외부와 연결되는 관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관계’가 중요한 만큼 때로는 ‘단절’도 필요하다. 모든 주변 관계로부터 단절될 때 비로소 자신의 본질, 하나님과 나 사이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남들에 의해 평가받는 것 말고 정작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지향주의를 탈피한 진정한 정체감과 소명에 대한 의문은 오직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된 자리에서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침묵과 고독은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 침묵의 시간은 잊어 버렸던 나를 향해 떠나는 여행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조직의 미로 속에서 실종된 나를 찾아 나서는 새 출발이다.
고독의 시간은 다른 사람을 관리하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자기관리를 생각하는 때이다. 양들을 챙기느라 미처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목자들이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돌아보게 하는 때이다. 침묵과 고독은 가장 효과적인 영성훈련이다. 내 안의 나, 자아의 내면을 직시하면서 인생의 본질을 명징하게 깨닫는다.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시며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그분의 소유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 존재’라는 인생의 비밀을 깊이 깨닫는다.
콜로라도의 겨울밤은 때로 너무 길고 춥고 외롭다. 지난해 콜로라도 로키산맥 산기슭의 조그마한 시골 도시로 이주해 첫 겨울을 났다. 주변 1,000마일 안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다는 단절감과 거기서 오는 외로움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혀 많이 힘들어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이제 내 영혼의 비타민이 되어주었다.
내 생의 어느 순간보다 더 따뜻하고 자상한 하나님의 손길과 위로를 체험하며 눈물을 쏟은 것은, 바로 내가 외로움으로 아파할 때였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멀어지면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가장 소중한 관계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고 내 가족들을 끔찍이 사랑하게 되었다. 잔가지를 쳐내고 나면 몸통이 보이게 마련이다. 비로소 나는 고독과 침묵 가운데로 초대되는 시간을 기대와 기쁨 속에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baekstephen@yahoo.com
백 승 환
(목사·예찬출판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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