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의 ‘손 맛’에 세계가 반하다

2007-11-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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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 맛’에 세계가 반하다

한국음식 보급에 나선 요리전문가 이명숙씨가 김치와 발효과학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손 맛’에 세계가 반하다

이명숙씨가 선보인 재래식 된장과 고추장. 항아리에 담겨 자연의 햇살과 싱그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캘리포니아 요리학교
이명숙씨의 음식 이야기

그녀는 한인 최초로 일본의 유명 TV 프로인 ‘아이언 셰프’에 챌린저로 출연했으며,
무형 문화제 황혜성 선생으로부터 전통
한국음식을 배웠다. 또 미국 유명 요리학교
CIA가 주최하는 세계 요리 박람회에
한국 요리의 진미를 선보여 세계 요리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현재
캘리포니아 요리학교 대표로 미국내 한국
요리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요리연구가
이명숙씨에 관한 얘기다. UCLA와 LA
통합교육구 등을 상대로 한국 전통 음식
전하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씨를
20일 만나 그의 음식세계를 들어봤다.

일본.미국서 요리수업, 궁중요리까지 섭렵
세계대회에서 진가...’한국 맛’ 알리기 앞장


▲어린 시절부터 ‘필수’였던 요리

“어머니가 비즈니스를 하시면서 아홉 살 때부터 5남매 중 장녀인 제가 동생들 밥 챙겨주고 뒷바라지를 했어요. 유교 집안이라 제사를 드렸는데, 제삿날이 왜 그렇게 자주 돌아오던지… 전 부치고 실 고추 다듬는 등 제삿상 준비도 모두 제 몫이었답니다”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명숙씨는 어린 시절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고 회상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면서부터 요리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과 중 하나였고, 음식 맛 있기로 유명한 전라도 출신인 그는 생활고와 싸우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류의 한식을 섭렵하게 됐다.
이후 고전무용을 전공했고, 무용 활동을 계기로 일본에 가게 됐다. 그 곳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한국 교포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을 접했다. 한국 음식이 ‘못 사는 나라’ 음식으로 천대 받는 사실에 ‘발끈’한 그는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를 보급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만 20세의 젊은 혈기로 그가 처음 연 식당은 오사카의 ‘한일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확한 레서피 없이 그저 ‘손 맛’에 의지하며 주먹구구식으로 만드는 음식은 그때그때 양이나 맛이 틀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제대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쓰지(Tsuji) 요리 전문대학을 다니며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일본 최고의 인기 TV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에 출연해 한국 음식의 진가를 선보였으며, 일본 경제 신문에 한국 음식의 정확한 이해에 대한 칼럼도 게재하는 등 한국 음식의 맛을 홍보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에 한국 전통음식 기능 보유자인 황혜성 선생의 딸 한복진 교수로부터 사사를 받게 된다. ‘황혜성 가’와의 만남을 통해 조선왕조 궁중 음식의 우수성과 전통음식에 대한 깊이를 다졌고, 이후 미국의 유명 요리학교인 CIA에서 공부하며 세계 음식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그는 3년 전 시작한 캘리포니아 요리학교를 통해 한국 음식 소개와 조리법 보급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CIA가 주최한 ‘2007세계 요리 페스티벌’에 참여, 비빔밥과 잡채, 불고기, 갈비 등을 선보여 세계에서 몰려든 요리 전문가들을 매료시키기도 했다.

김치도 와인처럼 발효가 생명
항아리.옹기 같은 숨쉬는 용기서 익혀야 오묘한 맛 내

▲김치는 발효과학의 결정체

한인 식탁의 기둥인 김치 이야기를 좀 해 달라했더니 어디선가 항아리 몇 병을 가져온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윽한 냄새가 진동하는 재래식 된장과 고추장이 들어 있다. 된장은 5년 전, 고추장은 3년 전에 담근 뒤 땅을 파고 묻어뒀던 것이란다. 한입 맛을 보니 혀 끝을 자극하는 맵고 짠 맛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 “오묘하다”는 표현 그 자체였다.
“발효과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김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그녀는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등 5가지 기본 맛에 한 가지 더 맛이 있는데 바로 자연 발효에서 나오는 그윽한 맛이란다.
이씨는 “마늘을 넣고 발효시킨 김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영양덩어리”라며 “세계 요리 및 영양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든 뛰어난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한국의 김치박물관을 찾으면 정성껏 담은 김치를 산속 계곡 폭포 뒤 동굴 속에 7~8년간 보관해 자연 발효시킨 묵은지를 만날 수 있다며, 김치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잘 담근 뒤 보관만 잘 하면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이명숙씨의 설명을 듣다보니 언젠가 세계적으로 김치 바람이 불지 않으리라는 법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인 ‘로마네 콩티’(Romanee-Conti)와 같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00지역 묵은지 김치’가 탄생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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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전문가 이명숙씨가 전라도식 전통 김치 담그기를 선보였다.

▲이명숙씨가 소개한 김치 담그기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는 일단 항아리나 옹기 같이 ‘숨쉬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치는 만든 이후에도 계속해서 발효가 진행되는 ‘생명력’있는 식품이라 플래스틱이나 스테인레스 같은 인공 용기에서는 자연 발효가 진행되기 어렵다.
소금에 절인 배추에 곱게 빻은 고춧가루와 잔 새우젓, 소금과 생굴, 멸치 액젖 등을 넣어 담근 김치는 최근 시판되는 김치 냉장고에서 익혀도 맛있다. 일반 냉장고를 사용할 때는 얼기 직전의 온도에서 보관하며 플래스틱이나 스테인레스 대신 항아리 옹기, 그도 아니면 유리병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김치 속을 만들 때 통 고추를 갈아 양념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단맛이 가미되며, 설탕 대신 사과나 양파를 갈아 넣어도 좋다. 또 소금을 적게 넣고 대신 새우젓 국물을 따로 붓는 것도 맛있는 김치 만드는 방법이다.
이명숙씨는 김치 양념을 만들때 찹쌀가루로 만든 찹쌀풀을 넣는다. 이는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전라도식 비법’으로, 이렇게 하면 김치 국물이 더 진해지며 발효시 맛은 더욱 그윽해 진다고.
이명숙씨는 한편 오는 12월1일 김치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하는데 회원들은 직접 김치를 만든 뒤 만든 김치는 가져갈 수 있다. 문의 (949)690-6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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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식 김치 담그는 과정. 각종 재료에 찹쌀 풀을 붓고(왼쪽) 골고루 섞이도록 양념을 만든다.

<궁중김치 레서피>
재료: 배추 10포기(60파운드), 소금 2컵과 1컵, 물 20컵(4리터), 무 5개(10파운드), 미나리 2단(8oz), 갓 2단(8oz), 실파 1단(4oz), 대파 1단(4oz), 양파 1개, 사과 2개, 물오징어 1마리 씻은 것, 생굴 8oz, 다진 생 새우 8oz, 고춧가루 5컵, 찹쌀 풀(찹쌀가루 1/2와 물 1/2컵을 잘 섞어서 끓는물 3컵에 풀은 뒤 다시 끓인 것), 다진마늘 1/2컵, 다진생강 4큰술, 새우젓 2컵, 멸치액젓 3컵, 소금 1/2컵, 설탕 6큰술
만들기: 배추는 다듬어서 반으로 포기를 가른다. 물 4리터에 소금 2컵을 풀어서 배추를 담갔다가 건진 뒤 뿌리 쪽의 두꺼운 부분에 소금 1컵을 뿌린다. 가른 단면이 위로 오도록 큰 항아리나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절인다. 절인 배추는 흐르는 물에 3번 정도 씻어서 소쿠리에 가른 단면이 밑으로 해서 놓아 물기를 뺀 뒤 포기가 큰 것은 다시 반으로 가르고 뿌리 부분은 깨끗하게 도려낸다. 무는 채 썰고 실파와 대파, 양파, 사과, 오징어는 같은 크기로 썰어둔다. 먼저 무채에 고춧가루와 찹쌀 풀, 새우젓, 액 젓을 넣고 버무려서 빨갛게 색을 들인 후 생굴과 오징어, 생 새우, 마늘, 생강을 넣어 버무린다. 미나리와 갓, 실파, 대파를 넣고 다시 한번 살살 버무린다. 소금과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다. 절인 배추잎 사이사이에 고르게 소를 채우고 바깥 잎으로 전채를 싸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맨 위에는 절인 배추 겉잎으로 덮고 깨끗한 돌로 눌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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