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접근금지 (상)

2007-11-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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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다녀온 것이 꿈만 같다. 번갯불에 콩 볶듯 일주일만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오니 돌아온 후의 후유증이 내내 가시질 않는다. 비몽사몽 사무실에 앉아 진한 커피만 연거푸 들이켜고 있다. 마셔본 커피중에 제일 효과 ‘짱’인 카페인 커피는 역시 한국식 다방커피가 최고다. 벌컥벌컥 커피를 들이켜고 있는데 승욱이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승욱이 어머니, 승욱이 와우이식 프로세서가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아요” “배터리를 갈았나요?” “네, 배터리를 새 것으로 갈았는데 불이 들어오질 않아요” “제가 퇴근 후에 기숙사에 가서 고칠 게요. 파트 하나를 교체해야 할 것 같아요”
퇴근 후에 기숙사에 들러 선을 하나 교체하고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에 학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또 프로세서가 작동을 안 하는데 어제 선을 교체 했나요?” “어제 저녁에 새 것으로 다 교체를 했는데요. 일단 제가 조금 있다 학교로 갈께요.”
사무실에 몇 시간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씀 드리고 승욱이 학교로 갔다. 교실에 들어서니 승욱이는 책상에 엎드려 있다. 마치 대포반(대학포기반) 학생이 수업에 관심 없는 듯 엎드려 빨리 수업을 끝내 달라고 시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선생님에게 승욱이 프로세서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악~이게 웬일이야” 선생님이 자랑스럽게 “제가 고쳐보려고 드라이버를 밖에 나가서 사와서 배터리 갈아 끼우는 곳이랑 봤어요” “아, 이걸 어째” 고쳐보려고 애를 썼다는데 뭐라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일단 학교 밖으로 나왔다. 프로세서는 연장이 필요 없이 버튼 하나로 파트를 다 교체하게 되어 있다.
조각조각 난 프로세서를 들고 난 UCLA로 달렸다. 승욱이 프로그램이 UCLA 컴퓨터에 저장이 되어 있기에 일단 그 곳으로 가야 해결이 된다. LA는 왜 이리도 하루종일 차가 막히는지 신호등은 계속 걸리고 UCLA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라 데스크에 아무도 없다. 한참을 기다리니 승욱이 담당 청력사 지나가 들어온다. 난 그녀에게 승욱이 프로세서를 내미니 “떨어뜨렸어요?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왔어요?” “얘기가 길어요. 이거 지금 고칠 수 있어요?”
지나가 사무실로 들고 들어간 후 깜깜 무소식이다. 드디어 지나가 나온다. “아무래도 이거 본사로 보내야겠어요. 도저히 여기선 못 고쳐요” “그럼, 얼마나 걸려요?” “한달 정도 걸릴 거예요” 울상을 짓고 있는 내게 “걱정마요, UCLA에 있는 것을 빌려 드릴게요. 프로그램을 해서 드려야 하니까 잠깐 기다려요” “휴, 다행이다”
지난 2년간 여러 가지로 고장이 많았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파트를 끊어뜨리고 주문한 파트가 오기 전에 또 끊어뜨리고 파트를 잊어버리기도 부지기수였고 오늘은 선생님까지 합세해서 완전 박살을 냈으니 이럴 때마다 학교로 기숙사로 또 UCLA로 뛰어다녀야 하는 내가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다. 거기다 파트 값이 얼마나 비싼지 허접한 케이블 하나가 내 자동차 개스를 한번 가득 채우는 값이다.
UCLA에서 빌려준 프로세서를 들고 다시 승욱이 학교로 돌아왔다. 여전히 승욱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있다. “이승욱, 엄마가 프로세서 가지고 왔어. 지나가 빌려줬어. 조심해서 달고 있어 알았지?” 귀에 그리고 가슴 앞에 프로세서를 달아주니 생기가 돌고 황금미소를 한 번 날려준다. 만족하는 얼굴로 바로 공부하는 자세를 잡고 책상에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다. 그래도 웃는 승욱이 얼굴을 보니 힘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하루 반나절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문제를 해결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며칠후…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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