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11-23 (금)
크게 작게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죽은 고기도 걸려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산고기인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말씀이요.’
1960년대 초 한국 불교 조계종단의 초청으로 내한한 남방불교권인 태국의 스님들이, 대승불교권인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의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는 소리에, 그렇게 냉소적인 한마디를 던진 바 있다고 합니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 소위 남방 상좌부 불교 권에서는 출가자가 고기를 먹는 것, 즉 육식을 허용하고 있으나, 중국, 대만, 한국, 등 대승불교권에서는 육식을 금하고 있습니다.
남방불교 쪽에서 육식이 허용되고 있는 것은, 육식에 대한 초기불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며, 또한 그곳에서는 아직도 스님들이 식사를 걸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음식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서력 기원 전후 흥기한 대승불교권에서 육식을 금하게 된 배경에는 극단적인 육식 금지사상을 담고 있는 초기 대승불교 경전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 경전들 중 열반경은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 사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결국, 살생은 물론 모든 생물의 고기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불식육 사상으로 전개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약 이천 오륙백 년 전 초기 불교에서는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계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샤카무니 붓다께서는 ‘산 것을 몸소 죽여서는 아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아니 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서도 아니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붓다께서는 그러나 세 가지 점에 있어서 깨끗한 고기, 즉 삼종정육(三種淨肉)은 먹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나는 허락한다.’
이어서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하며, 훔치고 거짓말 하는 일, 그리고 험담하고 이간질하며, 인색해서 아무것도 남에게 베풀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께서 육식을 권장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육식을 엄격히 금지하시고 채식만을 고집하신 것도 아닙니다. 붓다께서는 결국, 음식은 다만 이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삼종정육으로 제한된 육식과 식탐 없이 취한 여타의 음식에서 얻어진 에너지를, 수행에 잘 활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한데, 그러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 이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제자의 눈물’이란 제목의 이 시는, 왠지 나의 가슴을 싸하고 알알하게 파고듭니다.
‘수척해진 노스님을 생각하면서/ 약이라도 드시라고 아뢰었더니/ 일부러 죽는 것도 죄이련마는/ 억지로 사는 것도 업이러니라./ 앞산에 송화가 한창이라니/ 솔가루나 몇 숟갈 받아 오너라./ 파리해진 큰스님을 생각하면서/ 고기라도 드시라고 부러 아뢰었더니/ 내 몸 주어 남을 살린 고행 있어도/ 남을 먹어 내 몸 불린 수행은 없다/ 뒷산에 송화가 한창이라니/ 솔잎이나 몇 바늘 솎아 오너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