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 바라보기 - 말하지 않아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2007-1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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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한 아주머니에게서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반 년 전 아들을 결혼 시켰는데 어떻게 며느리에게 해주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내게 며느리로서 좋은 시어머니의 모습을 알려달라고 하셨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혹스러웠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라 내게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꼭 며느리 시어머니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에서도 부부 관계에서도 모두 좋은 관계를 갖는 방법은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 전에 나도 어떻게 살아야지 라는 꿈도 많았고 여러 가지 계획도 각오도 있었다.
누구나 바라듯이 결혼을 해도 우아하고 늘 웃는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며 뭐든 노력하면 이루어지리라 믿고 나 또한 좋은 며느리가 어떤 며느리인지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짧게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길게는 결혼을 하고 조금 지나 그동안 내가 바라며 세웠던 계획들이 나만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의 경우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면 기특하다 생각하실 거야. 괜찮다 괜찮다 말하며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딪치는 내 남편도 괜찮다는 내 말에 속는다. 처음은 기쁜 마음으로 말하지 않았고 괜찮다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괜찮지 않으면 괜찮다 이야기하기 싫다. 아마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듣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서일까.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제 결혼생활한 지 만 10년을 넘기고 보니 결혼 초에는 몰랐던 여러 가지 중에 새로 맺어진 가족과의 좋은 관계란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가깝다 생각만 하지 말고 서로 항상 조심하고, 관계에 있어 위아래와 나이의 순서를 두지 말고 늘 동등한 선상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는 생각은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과, 서운한 말을 해야만 할 때는 마음의 반 만 이야기하는 것이 혹시라도 어긋난 관계를 다시 회복할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라는 생각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차오르는 눌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버려 그 말들을 주워 담기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 아주머니께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말하지 않아도 들을 줄 알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쯤은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일목요연하게 잘 말할 수 있는 반면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 자신의 마음을 잘 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한 여자는 시댁식구들에게 그렇다. 어떤 관계든 시끄러울 때는 하는 말도 잘 못 듣고, 말하지 않으면 아예 모르고,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기 때문에 시끄럽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마음이 있다. 그 마음에는 예의라는 것도 있다. 그 마음은 소리가 없어 들리지 아니하고, 형체도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마음은 예의를 바탕으로 하여 예의에 어긋났을 때에는 서로의 마음이 상처를 입는 듯하다. 들리는 말만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을 잃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아도 들을 줄 알아야한다. 저 사람이 마음이 아프구나, 나를 배려해 주는구나,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이렇게 들을 줄 알아야한다. 이렇게 볼 줄 알아야한다. 말하지 않아도 들을 줄 아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게 된다. 그러고 보면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갖는 비결은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 그 하나인 것 같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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