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주현 기자의 샤핑의 기술

2007-1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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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기자의 샤핑의 기술

트렌드 리더들의 ‘패션 선생님’ 케이트 모스. 자신만의 스타일과 트렌드를 적절히 섞어 스타일리시하게 옷입기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연유 때문인지 주변 지인들에게 샤핑 노하우랄까 혹은 최신 유행 트렌드같은 것들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는다.
“어디서 샤핑하면 싸고 좋은 옷들을 살 수 있죠?” “요즘 핸드백은 어떤 게 유행인가요?”와 같은 두리 뭉실한 질문에서부터 “정장 바지 한 벌 사려는데 추천 브랜드 없나요?” 혹은 “지금 입고 있는 스웨터는 어느 브랜드 거예요?”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워낙 브랜드 가지 수도 많은데다 자고 나면 재기 발랄한 반짝반짝한 디자이너들이 쏟아져 나와 웬만한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트렌드를 따라 잡을 수가 없다. 패션정보가 드디어 문화 권력으로까지 확산되는 느낌이다.
얼마 전 만난 한 40대 후반의 전문직 ‘언니’는 “요즘 젊은 아이들이 말하는 브랜드는 한번 들어서는 도저히 외우기도 힘들 지경”이라며 “게다가 유행한다고 큰맘 먹고 사고 나면 어느새 새로운 백이 나와 산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내 백이 구닥다리가 되거든. 이게 말이나 되는 거야?”라며 분기탱천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언니’ 역시 “내 세대에는 구치 혹은 루이뷔통 하나면 딱 패션이 평정됐거든. 그런데 요즘은 듣도 보도 못한 고가의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오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샤핑을 즐겼는데 요즘 트렌드를 쫓는 게 너무 힘들어 아예 샤핑이 싫어지려고 해”라는 충격(?)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이젠 이 패션이라는 중원의 세계에선 샤핑의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선 이 춘추전국의 시대에 살아남기도 힘들게 돼버린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이쯤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엔 ‘아주 싸고 좋은(멋진) 옷이란 없다.’ 만약 그런 옷이 있다면 그건 2~3류 패션 잡지들이 먹고살자고 퍼뜨리는 허상일 뿐이다. 다만 비싼 옷을 싸게(그것도 아주 싸게) 사는 기술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많은 백화점에 명단을 올려 세일 때 꼭 이메일이나 엽서를 보내달라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편애하는’ 브랜드 담당 직원에게 프리세일(pre sale) 일정을 귀띔해 달라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트렌드. 이 역시 답은 명명백백하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여성 패션지 한 권 정도는 정기적(굳이 사지 않더라도 서점에 갔을 때 획 둘러보는 식이라도)으로 보고, 윈도샤핑을 통해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눈썰미 좋고 패션 감각 좋은 이를 좋은 친구로 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물론 ‘아니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단 말이야. 미쳤군’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패션은 그저 ‘형이하학적인 그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요즘은 패션을 두고 철학과 문화를 논하는 ‘형이상학적 영역’으로 넘어왔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한 인간의 스타일은 단순히 패션 감각 여부를 넘어 한 인간의 정체성까지를 논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결국 패션 공부 역시 정공법으로 승부해야 한다. 많이 보고, 입어보고, 연구하고, 또 때론 실패도 하면서 패션 노하우 역시 한 뼘씩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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