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곳에 가면 ‘행복 이발소’가 있다

2007-11-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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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운타운 홈리스 이발 4년 - 이태실·이인석 부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가슴에 제대로 와 박히는 순간. 왜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심장이 턱하니 내려앉아 버릴 것 같은 그 숨막히는 순간, 그래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미동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찰나 말이다. 몇 주전 이른 아침 안개 걷히지 않은 희뿌연 다운타운 한 좁은 골목에서 그런 꽃보다 아름다운 노부부를 만났다. 그러나 가슴 내려앉는 순간 치고 의외로 풍경은 다분히 단조롭다. 천막에 간이 의자 펴고, 손때 묻은 가방에서 가위 들어 홈리스가 오는 순서대로 한 명, 한 명 이발하는 광경이다. 뭐 그리 새로운 것도, 거창한 것도 없어 보이지만 풍경은 경건했다. 특별히 그들에게 뭘 하는 건지, 왜 하는지 등등 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눈물샘이 작동한다. 올해로 4년째 홈리스들 머리를 깎아주는 이태실(73)·인석(65)씨 부부를 햇볕 좋은 오후 LA 한인타운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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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홈리스들의 이발을 해온 이태실·이인석 부부. 이들 부부는 봉사활동뿐 아니라 인생의 매순간 가장 완벽하면서도 가장 사이좋은 길동무다.>


노숙자 머리·코털 깎으며 더럽다기보다
그들이 시원해질 것에 되레 마음 편해져

■아름다운 이발소, 문 열다

그들의 이 아름다운 미션은 5년 전 멕시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여행으로 떠난 멕시코 한 고아원에서 그곳 아이들 이발을 해주다 말 그대로 깎아 놓은 듯 밤톨처럼 깨끗한 아이들 두상을 보면서 ‘가진 것도, 특별한 재주도 없는데 이렇게 어려운 이웃들 이발 해주며 늙어가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소망하나 가슴에 품은 게 이들 봉사의 출발점이다.
이왕 이발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LA로 돌아와 미용학교를 알아봤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던 차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미용교실을 듣곤 한걸음에 달려갔다.
“저희처럼 이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무료 교실이었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얼마나 감사하던지…. 남편을 실습용 마네킨 삼아 열심히 미용기술을 배워 그때부터 홈리스 이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그 당시 남편 이씨는 거리를 나서기가 무섭게(?) 되기도 했다. 왕초보가 깎은 머리니 오죽했겠는가. 그래도 이 넉살좋은 남편은 지금은 고급 미용실 부럽지 않은 수준이라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리곤 한 달에 한 번씩 LA 다운타운 거리에서 홈리스를 위해 이발을 해주다 최근 2년 새엔 한 주 걸러 한 번씩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남들은 홈리스의 머리카락이라 밟기도 싫어하는 것을 맨손으로 만지고 가위로 알뜰살뜰 잘라주길 어느새 4년. 심지어 얼마나 불편할까 싶어 누가 시킨 것도, 그들이 원한 것도 아닌데 코털이며, 귀털까지 알아서 깎아주고 다듬어 준다.
“처음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더럽다거나 불쾌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깎아놓으면 저들도 시원하겠지, 또 몇 주는 편안하게 살겠지 하는 생각에 오히려 제가 더 속이 시원하죠.(웃음)”

진심어린 감사의 입맞춤 못잊어

5년전 멕시코 선교여행서 아이들 머리 깎아준 것이 이발봉사의 출발점
뒤늦게 미용기술 익혀 한 달 2번 다운타운 홈리스들 무료 서비스 나서
부부 함께 신학대 다니며 남편 고향 철의 장막 북한에 복음전파 꿈 키워
아내 이씨의 이 나지막한 목소리엔 진심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듣는 이를 또 한번 코끝 찡하게 만든다.

■베푸니 행복 두배, 기쁨 두 배

“사람들이 참 착해요. 같은 장소에서 오랜동안 이발을 하니 이젠 단골도 생겼는걸요.(웃음) 서로 안부를 묻는 것은 기본이고 이젠 눈빛만 봐도 기분이며 컨디션을 척 하니 알게되더군요.”
이들 부부의 말처럼 이제 이들은 다운타운 홈리스에겐 가장 반가운 손님이며 반가운 헤어디자이너다.
“이 일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인데 덩치 큰 흑인 홈리스의 이발을 해준 적이 있었어요. 의자에 앉는 순간 머리며 귀며 차가운게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픈 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코털까지 다 정리해 주고 나니 그이가 정말로 고마운 눈빛으로 저를 꼭 끌어안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뺨에 입을 맞췄는데 그 차가운 감촉을 그러면서도 진심이 전해지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에 굶주려 있는 이들이 보내는 감사여서 더 값진 것이었죠.”
아내 이씨의 말에서도 짐작했겠지만 이 봉사가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머리에 딱지가 앉고, 곪아터진 자국이 곳곳에 있는 이들의 이발을 해주는 것이 쉽지도 않은 일일뿐더러 만에 하나 잘못하다간 면역력이 약한 이들의 머리에 상처가 나기라도 하면 지혈이 쉽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여겨진다.
“비만 오면 걱정돼요. 집도 절도 없는 이들이 어디서 비를 맞지나 않을까. 일교차에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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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2번씩 찾는 LA 다운타운에서 홈리스에게 이발을 해주고 있는 이씨 부부.>


■팍팍한 이민살이, 가족은 나의 힘

이들 부부는 1982년 1남 2녀를 데리고 LA로 이민 왔다.
한국에서 엔지니어였던 남편 이씨는 이곳에 와 주유소를 운영했고 아내는 남편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 덕분인지 한인 운영 회사를 거쳐 금방 토랜스 소재 ‘로빈슨 헬리콥터’에 청사진 검사관으로 취직했다.
굳이 이민살이 팍팍함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이들 부부인들 왜 어려운 일이 없었겠는가.
15년 전쯤 지인의 말만 믿고 돈을 투자한 것이 회수되지 않아 잘되던 주유소에 집까지 처분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한 3년 고생했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까지 겹쳐 참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이 안돼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자책만으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남편 이씨의 말처럼 그들 가족에겐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가족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 더 끈끈한 사랑을 쌓은 시간이기도 했다는 것이 이들의 고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 이씨가 든든한 직장이 있어 빨리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 가족에겐 참으로 큰 울타리 같던 직장에서 25년을 일하다 지난해 은퇴했다.
워낙 애정을 갖고 일한 직장인데다 대우도 좋아 은퇴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출산과 육아 때문에 뉴욕에서 온 며느리와 손자 때문에 어렵사리 내린 결정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 두느냐고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 피붙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도 없고, 이젠 할만큼 일도 했다 싶어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25년간 커리어우먼으로 일하다 갑자기 쉬려고 하니 처음 몇 달은 우울증을 겪을 만큼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 부부에게 이 시간은 봉사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지금 부부는 함께 신학대학을 다니고 새로운 미션을, 새로운 꿈을 준비중이다.  

■잉꼬부부 혹은 닭살 부부?

이들 부부, 금실이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울고 갈 지경이다.
옆에서 케익이며 커피며 알뜰살뜰 챙겨주는 남편은 어떻고, 남편의 꿈을 위해 때론 자신의 꿈을 접는 아내의 헌신은 또 어떤가.
“이름 같죠. 아내 이름은 남자 이름이잖아요. 제 이름은 오히려 더 여성 이름 같고. 그래서 제가 아내노릇 하면서 살아요.(웃음)”
남편의 농이 아니더라도 이 두 부부 이런 의기투합 덕분에 둘은 틈만 나면 자동차에 캠핑도구 챙겨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이 부부, 은퇴와 함께 캠핑카 타고 대륙횡단을 계획했지만 최근 남편의 꿈에 따라 아내의 꿈은 당분간 접기로 했다.
“북한 선교를 하는 것이 제 일생의 꿈입니다. 제 고향이 북한 원산입니다. 더 늙기 전에 그곳 아이들과 철의 장막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마지막 꿈입니다.”
누가 이들을 나이든 노인이라 폄하할 수 있을까. 꿈 하나만은 약관의 청년이 부럽지 않아 보인다.

글·사진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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