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나의 살던 고향은

2007-1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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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377-29호가 나의 본적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 때까지 마포구를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곳이니 강남과 강북을 쉽게 넘나들 수 있었고,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유명한 대학이 즐비하던 곳에서 자랐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도 남편의 직장이 을지로 입구에 있었기에 언제나 도심 한복판이 연애장소였고, 자란 곳 또한 도심 속에 있었다.
나름대로 빌딩이 즐비하고 북적북적 사람 많은 곳에 살았던 내가 미국에서 7년의 시간을 살다가니 완전 원시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빌딩 숲에 덩그러니 서 있다.
익숙하면서도 너무 낯설어진 환경이 적응이 되지 않고 있다. 럭서리 빌딩에, 럭서리 자동차, 럭서리 명품을 휘감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변했구나, 아주 많이’ 건물마다 간판이 어찌나 많은지, 도로 위에까지 주차된 차로 인도 위에는 사람 반, 차반이고, 표정 없이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들, 건물마다 음식점에 노래방에 PC방이 있고, 도로의 차들이 계속해서 빵빵거리며 가는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난 그 속에서 적응력을 완전 상실한 채로 ‘시차 적응이 안돼서 이러는 거야’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런 곳에서 난 겁도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강북을 통과하여 강남을 가로질러 과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버스 안에는 사람들로 만원이고, 도로 위에는 차들로 만원이고, 버스정류장에도 사람들로 만원이고, 좌우사방을 둘러봐도 여유공간 빈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7년간 모든 도시가 개발이 된 것인지, 인구증가로 인한 공간 확보인지, 발전의 결과인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이러는 거지?’ 차를 돌아서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는 길도 없다.
내가 30년 가까이 살 때는 몰랐던 모든 상황이 미국에서 7년을 살았다고 마음속에서는 모든 것에 비교가 되기 시작이다. ‘차를 왜 이렇게 바짝 들이대는 거야, 왜 이리 신호는 자주 바뀌는 거야, 앞차에서 매연 뿜는 것 좀 봐, 급브레이크를 그리 자주 밟으면 뒷 차는 어떻게 방어운전을 하라는 거야, 가로등은 왜 이리 흐린 거야, 불법 유턴을 아무데서나 하고 있는 것 봐, 차선이 하나도 안보이네, 택시들이 왜 이리 무섭게 운전을 하는 거지?’
미국 가기 전에 운전할 때도 똑같았던 상황인데 왜 이리 참지를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이런 박쥐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니 쯧쯧.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공부하고 친구들과 성장하며 지내 온 곳이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나의 실수다. 나 또한 지난 시간 동안 아주 많이 변했는데 그 시간동안 사람도 아닌 건물과 도로와 시설들이 그대로 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닐까? 너무 발전한 모습과 변한 환경이 나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나보다. 훨씬 잘 살아진 한국을 뿌듯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내심 샘을 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도 내가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사람인데 말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라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도시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 그것도 훨씬 잘 살아진 모습으로 말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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