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고백

2007-10-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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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승욱이의 부모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행복했을까? 만약 승욱이가 정상아였으면 우린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아버님이 계신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결론은 그래도 승욱이가 우리 가정에 온 것이 감사하다는 결론을 내릴 때쯤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앞에 서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이다. 잘못한 것을 들킨 양 잔뜩 긴장을 하고 아버님이 계신 병실 문을 열었다. 코에 호스를 꼽고 있는 아버님 얼굴을 보았다. “흑, 아버님, 저 왔어요” 눈을 뜨시면서 “우에(어떻게) 왔노” 친정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울지 않으려 해도 눈에선 벌써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손을 올리시면서 내 손을 잡으셨다. “혼자 왔나?” “네. 혼자 왔습니다” “뭐 할라꼬 여까지 고생하고 왔노” “아버님 뵐려고요” 잠시 침묵이 흘렸다. 계속 울고 서 있는 나,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님.
지난 7년의 세월을 다 설명할 수도, 다 이해시켜 드릴 수도 없다. 아버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시려는데 발음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뭔가를 열심히 말씀을 하시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버님의 입 모양을 보고 “애들은 왜 안 데리고 왔냐고요?” “밥은 먹었냐고요?” “언제 가냐구요?” 내가 질문을 하고 내가 답을 하고 침대 옆에 앉아 아버님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아버님의 얼굴을 만지면서 “죄송합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다른 식구들을 잠시 병실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아버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일, 하루는 친정식구들에게 인사를 드려야하기에 시간이 얼마 없음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버님,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불편한 거 없으세요?”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마치 지난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난 더 허둥지둥 서두르고 있다. 아버님은 손짓으로 앉아 있으라고 한다. 뭔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다. “아버님, 아이들 이야기 듣고 싶으시죠? 있잖아요...”
엉킨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이 나의 고백이 시작되었다. “아버님, 승욱이 낳고 하루도 편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지난 7년간 미국에서 그저 아이들 평범히 잘 키우고 잘 있을 거라 생각하셨겠지만 전 그다지 편하지만은 못했습니다. 전화 상에서는 언제나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렇게 인사로 잘 있다고 했지만 한 밤도 전 베개에 눈물을 묻히지 않고 잔 날이 없습니다. 아버님, 승욱이가 눈만 못 보고 있는 줄 아시죠? 승욱이는 귀도 듣지 못합니다.”
나의 말에 아버님 눈이 동그래지면서 “귀도? 참말이가” “네, 아버님 막내 손자가 눈도 귀도 거기다 말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버님이 너무 충격을 받으신 것을 안다. 식구들이 지난 7년 넘게 말씀드리지 않은 사연을 며느리가 그것도 담담하게 말씀을 드리니 아버님이 그렁그렁 긴 한숨을 내쉰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니 난 마음이 후련한데 아버님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계신다. 나쁘고 못된 며느리가 위독하신 아버님 앞에서 아버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아버님 많이 놀래셨죠? 이 말씀은 제가 직접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아버님께 말씀 드리지 못한 것 죄송합니다. 아버님이 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섭섭해 하시고 괘씸하게 생각하신 것 압니다. 하지만 아버님 한국으로 올 수 없었던 제 마음도 편치는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나를 다 이해하실 거라 생각지 않았지만 아버님의 눈빛이 나를 이해하고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신다.
밤이 늦도록 아버님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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