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교사 3인의 유쾌한 수다

2007-10-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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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이 오히려 배움입니다”

이토록 유유자적한 스승들이라니.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으면 안 된다’라는 말 속 ‘훈장’의 근엄함이랄까, 권위랄까 하는 무거움보다는 제자들의 그것을 닮은 해맑은 미소며 또랑또랑한 목소리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 놀이가 아닐까 싶을 만큼 유쾌해 이들이 자못 신기해 보이기까지 한다. 15년 경력의 베테런 교사 조앤 리(42·킨더가튼 담임), 열정만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신세대 교사 장윤아(27·킨더카튼 담임), 하루 24시간을 가르치는데 쏟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노력파 교사 줄리 윤(40·1학년 담임)씨 등 3가 초등학교(교장 수지 오)의 열정파 한인 여교사 3인을 만나봤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활력
학생들의 학습능력·지식이 향상되는 데서 보람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인터뷰 중에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교직생활의 애환과 분투가 살짝살짝 묻어났다. 왜 아니겠는가. ‘백년대계’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미래가 이들의 어깨에 놓여 있는데.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에서부터 한인 학부모들에 대한 조언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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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것의 버거움보다 학생들에게서 매일매일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교사가 천직이라고 말하는 3가 초등학교 한인 여교사 3인. 왼쪽부터 줄리 윤, 조앤 리, 윤아 장 교사.>

■“교사는 내 운명”

“방학이 있어 너무 좋은 직업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금세 “그렇다고 그것만 보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간혹 어린 학생들한테 시달리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내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그건 자신 있게 ‘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요. 하루하루가 새롭고 또 아이들을 볼 때마다 에너지를 얻는 것을 보면 천직이라는 말이 딱 맞는 거죠.”(조앤 리)
젊은 교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자칫 젊은 세대에겐 가르치는 일을 반복하는 교사라는 직업이 단조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 교사는 손사래부터 친다.
“단조롭다뇨? 정말 다이내믹한 직업이죠.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제게 활력을 주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게 학습능력이 됐든 생활태도가 됐든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낍니다.”
장 교사뿐 아니라 이들이 교사로서 가장 보람 있을 때를 꼽으라고 하니 다들 자신의 학생들이 지적 능력과 마음이 모두 무럭무럭 자라날 때라고 한다.

한인 학생·교사 결석하면 큰일나는 줄 알아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 아이들 지도엔 도움

“지난 학년에도 학교를 다니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던 학생이 제 반에 있으면서 학교 오는 것은 물론 학습에도 재미를 느끼게 됐다는 이야기를 학생의 부모에게서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어요. 그때의 보람과 기쁨이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걸요?”(줄리 윤)
윤 교사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다들 한국 남자들 군대 얘기, 여자들 출산 얘기 저리가라 할 재기발랄한 무용담들이 터져 나왔다.
“한번은 학급 남학생 하나가 무심결에 저를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순간 당황했지만 학생이 그만큼 날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하기도 했죠.”(조앤 리)
“지난년도엔 4학년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한 남학생이 학년이 바뀌고도 계속해서 방과후에 학급 일을 도와준다며 저를 찾더라고요. 그만큼 친근하게 느끼기 때문이겠죠?”(윤아 장)
“어느새 첫해에 가르친 제자가 대학생이 됐어요. 며칠 전에 그 첫해 학생이 대학생이 돼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오랜 교직생활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입니다.”(조앤 리)

■“치맛바람요? 희생과 열정입니다.”
한인 여교사 3명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당연히 한인 학부모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워낙 ‘치맛바람’이니 ‘과열’이니 단어들이 한인 학무모들 교육열 앞에 가 붙어 부정적 이미지가 훨씬 더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오히려 교사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학교에 유대인 학부모들도 많은데 이들의 교육열 역시 한인 못지않습니다. 한인 학생들 과외공부로 바쁘다는데 이들 역시 자녀를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과외활동에 올인 합니다. 어떤 유대인 학부모는 자녀가 발레에 피아노에 미술 과외로 바쁘니 학교 숙제를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없냐고 물어올 정도니까요.”(조앤 리)
또한 이들은 이제 1.5세 학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상식에 어긋나는 치맛바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인 학부모들의 가장 큰 장점은 학교의 중요성에 대해 자녀들에게 잘 교육시킨다는 것과 학교에서 자녀에 대해 어떤 어드바이스나 지적을 하면 빨리 반응하고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사 입장에선 학생을 교육하고 선도하기가 쉽다는 말이 됩니다.”(줄리 윤)
게다가 이런 한인 학부모들의 열성이 이민 한 세기만에 지금의 한인사회와 한인 2세들을 키워낸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타인종 학부모들은 자녀가 아프면 2~3일 결석은 예사로 압니다. 그러나 한인 학부모들은 결석하면 큰일 나는 줄 알죠. 가벼운 감기 정도로 학교를 빼먹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물론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이 결석에 대해선 교사들도 마찬가지예요. 조금만 아파도 병가를 쓰는 타인종 교사에 비해 한인 교사들은 학교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엔 기를 쓰고 출근합니다.(웃음)”
 
■“직업병? 맞습니다. 맞고요.”
모든 직업이 그렇듯 교사 역시 특별한 직업병이 있게 마련.
“어느 날 문득 보니 남편은 물론 집에서 아이들에게 말을 해도 부탁 형이 아닌 명령형이 많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잔소리도 느는 것 같고…(웃음)”(조앤 리)
또 이 교사는 이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루 종일 씨름하다 보니 집에 가선 말수가 부쩍 줄고 소음에 대해 대단히 예민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결코 쉽지 않은 직업임이 가늠되는 대목이다.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다 주다보니 막상 집에서 내 자녀들에겐 어떨 땐 소홀해지도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늘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다 보니 오히려 제 자녀 공부 지도엔 소홀하기도 하죠.”(줄리 윤)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옛 어른들이 왜 ‘스승의 그림자조치 밟지 말라’고 했는지. 21세기, 보다 더 유쾌·상쾌·발랄해진 교사들이긴 하지만 그 뒤의 노력과 애환은 세월 흘러도 변한 게 없어 보인다. 흐르는 세월도 스승의 열정과 수고를 비껴 갈 순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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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리 교사가 킨더가튼 학생들에게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고 있다.>

한인 학부모들을 위한 교사들의 조언

교육열은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으뜸이지만 언어장벽으로, 생계가 바빠 자녀 교육을 애프터 스쿨에 맡기거나 대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정이 많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가 부족하다고 대화가 없다 보면 사춘기에 이르러선 문제해결이 되질 않아요. 그러나 언어가 장벽이 될 순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한국말로 대화하다 보면 커서도 자연스레 부모와 힘들어도 한국어로 대화 할 수 있습니다.”(윤아 장)
그리고 부모와의 대화는 학업 성적과도 직결된다는 것이 이들의 귀띔.
“집에서 부모와 대화가 활발한 학생들이 학급에서도 자신감 있고 발표력도 왕성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애프터스쿨 끝나고 집에가 저녁식사하고 좀 쉬다 어쩌다 보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만큼 바쁘기도 하고 부모님들도 대부분 맞벌이로 바쁘시다보니 대화의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래도 가능한 의식적으로라도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자녀의 지적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조앤 리)

<글·사진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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