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당신과 나 사이(하)

2007-10-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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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엄한 집안에 대접만 받던 막내아들, 난 개방적인 집안에 사랑만 받던 막내딸의 연애시절은 나름대로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주로 남편이 나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언제나 남자는 다 여자에게 잘해 주는 줄 알았다.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니 내가 뭔 짓을 해도 귀여워 보였나보다. 그런데 언제나 넉넉하게 나를 대하던 그 남자가 결혼하니 변했다. 그것도 완전 180도로. 누가 그랬던가, 잡은 물고기에겐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결혼해서 남편 시집살이는 매일 혈전을 불러 일으켰다. 나의 복장, 말투, 생각과 생활습관까지 나의 것들을 뜯어고치려 했다. 여자가 왜 그러느냐, 당신은 왜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느냐, 옷 좀 바로 입어라, 왜 당신 맘대로 결정을 하느냐 등 성격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혼 전에 친정에서 듣지 못한 말들을 들으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남편과 여러 가지 속상한 마음으로 친정에 가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내 화난 얼굴인지 아버지는 단번에 남편과 뭔 일이 있음을 아셨다. “니, 이 서방이랑 싸웠제?” ”아~뇨 얼마나 사이좋게 지낸다고요” “니 얼굴에 써 있는데 아부지한테 거짓말 할래? 남편을 왕같이 섬겨라 알았나? 그래야 니가 왕비 같이 대접 받는 기라.”
그리고 돌아서서 아버지는 살짝 남편을 불러다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민아가 철이 없제? 내가 몬 가르쳐 시집보내서 미안하데이. 그래도 마 오순도순 잘 살그라”
언제나 아버진 남편의 편을 들어주셨다. 사실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같은 경상도 출신에 아버지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셨고 남편도 경상도 사나이에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슬픔이 있었던지라 아버지가 남편을 제일 많이 이해해 주고 다독여 주었다.
승욱이를 낳고 부부간에 왜 갈등이 없었겠는가, 누구 탓이라 할 순 없지만 난 모든 것에 섭섭했다. 우리 남편은 사랑 표현이 너무 서툰 사람이다. 경상도 남자답게 퇴근해서 들어오면 “아는(아이들은)” ”밥 묵자” “자자” 이 세 마디가 다였다. 난 승욱이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는데 남편은 언제나 냉정했다. 남편은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 마음엔 언제나 남편에 대한 서운한 앙금이 깔려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를 마음에 품고 시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을 온 것이다.
차창 밖에는 내가 공항에서 내릴 때의 그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묵은 더러움을 완전 씻어버리려고 작정이나 한 듯 비가 퍼붓고 있다. 차 속에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난 그동안의 남편에 대한 서러움과 오해 등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다. 그 가운데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니 남편이 울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너무 가슴 아픈 부분을 내가 들춰내었는지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희생하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왜 그러셔야 했는데, 우리 애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그걸 당신이 알아?” 나도 울고 남편도 울고 눈물에는 묘한 치료제가 숨어 있는지 차창 밖에는 비로 인해 더러움이 씻겨나가고, 차안에는 눈물로 앙금이 씻겨나가고…
승혁이·승욱이 아빠, 나중에 우리가 늙어 서로에게 ‘천생연분’이란 문제를 낼 때 당신은 뭐라 말할래? 난 또 뭐라 말할까? 당신과 나 사이. 평생왠수? 천생연분?
여보, 우리 서로 노력해요. 천생연분으로 말할 수 있게 말입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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